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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
생명이라곤 도무지 없을 것 같았던 얼어붙은 땅에 살가운 온기가 배어나는 계절이다. 앙상한 가지가 아직 싹을 틔울 낌새도 보이지 않는 이맘때쯤 산에 오르면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는 나무가 있다. 회갈색 나뭇가지에 잎도 없이 노란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는 우리 강산의 봄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전령사이다.

생강나무는 한반도에 널리 분포하는 녹나무과의 낙엽활엽수로 강을 끼고 있는 산자락이나 계곡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크게 자라도 3∼4m 정도인 관목이다. 잎이나 줄기에 상처가 나거나 잘라 비비면 진한 향을 발산하는데 그 냄새가 마치 알싸한 생강냄새와 비슷하다고 해서 생강나무라 불린다. 이 향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일종의 소독제 같은 화학물질로 생강나무가 만들어 내는 방어물질이다.

생강나무는 다양한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녹차가 들어오기 전부터 어린잎이 돋아날 때쯤 이를 따서 말렸다가 차로 마셨는데 참새의 혓바닥을 닮은 어린잎의 모양을 따서 작설차라고 했다. 또한 독특한 향 때문에 나름대로 풍미가 있어 잎을 쌈으로 먹고 장아찌나 부각을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참죽나무잎과 함께 부각 중 최고로 손꼽힌다.

생강나무의 까만 열매는 예로부터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이나 등잔용으로 썼다. 생강나무 기름은 질도 좋고 향도 좋아 값비싼 동백기름을 구하지 못하는 중북부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대용품이었기에 산동백, 개동백으로 불렸고 심지어 강원도에서는 그냥 동백나무라고도 했다.

그래서 강원도 민요나 문학작품에 나오는 동백나무는 사실은 남쪽지방에서 겨울에 붉은 꽃이 피는 동백나무가 아니라 생강나무를 말하는 것이다. 춘천이 고향인 김유정이 1936년 발표한 단편소설 '동백꽃'에는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노란 동백꽃'에 '알싸한 향'까지 바로 생강나무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정선아리랑의 님 그리워 부르는 대목에도 등장하며, 가요 '소양강처녀'의 2절은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라고 시작되는데 여기에 나오는 동백꽃도 역시 생강나무꽃이다. 그 만큼 중부지방에서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다양하게 이용되었다. 한방에서는 생강나무의 나무껍질을 타박상과 산후풍에, 말린 가지는 복통과 해열, 기침 등의 치료에 썼다.

숲속의 봄은 생강나무로부터 마을의 봄은 산수유로부터 온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시기에 꽃망울을 터뜨린다. 그런데 산에서 자생하는 생강나무가 조경수로 많이 심겨지면서 거의 같은 모양으로 노랗게 꽃을 피우는 산수유나무와 자주 혼돈하게 된다. 이 둘의 구별법은 꽃모양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는데, 생강나무꽃은 가지에 바짝 붙어 아주 작은 공처럼 몽글몽글 모여서 피고 산수유는 꽃에 비해 꽃자루가 길어 작은 꽃들이 조금 여유로운 공간을 갖는다. 또한 생강나무는 꽃을 피운 줄기 끝이 녹색이며 줄기가 갈라지지 않고 매끄러운 반면 줄기가 갈색이며 거칠고 껍질이 벗겨진 부분이 많은 것이 산수유나무다.

이제 꽃샘추위의 기세도 누그러져 봄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자그마한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의 전령사 생강나무꽃을 맞으러 길을 나서보면 어떨까?

/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