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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高手) 묘수(妙手) 악수(惡手) 패착(敗着) 패(覇)싸움, 수(手)읽기 등 바둑 용어는 일상용어가 돼버렸다. 그만큼 바둑 서예 그림 거문고는 선비가 즐기던 4예(四藝)로 꼽혔고 바둑을 둘 줄 알아야 선비 축에 들었다.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두는 '보리바둑'이든 서투르기 짝이 없는 '줄바둑'이든 바둑 두는 흉내라도 내야 사대부(士大夫)-양반 소리를 들었다는 거다. 바둑 단수(段數)의 별명도 흥미롭다. 이제 겨우 싸움질을 할 줄 아는 '투력(鬪力)'을 3단이라 했고 조금 재주를 부릴 줄 아는 '소교(小巧)'는 4단, 지혜를 운용할 줄 안다는 단계의 '용지(用智)'는 5단, 그윽한 '유현(幽玄)'의 경지에 든 수준이 6단이다. 그럼 9단은? 그야 신과 인간의 경계, 신의 경지에 한 발짝 들이민 거 아닐까. 그런데 중국의 바둑 '위기(圍棋:웨이치)'를 글자 뜻 그대로 Surrounding Checkers라고 하지만 바둑은 한 마디로 '난가지락'이고 '좌은(坐隱)'의 경지다.

'좌은'은 앉은 채 은퇴한다는 바둑의 이칭(異稱)이고 난가지락은 한 마디로 신선놀음이다. '난가(爛柯)'란 중국 '술이기(述異記)'라는 책에 나오는 말로, 왕질(王質)이라는 나무꾼이 어느 날 난가라는 산에 깊이 들었다가 두 동자(아이)가 나무 그늘에서 바둑 두는 모습에 반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는 얘기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은 거기서 왔지만 바둑의 역사는 아득한 요순(堯舜)시대부터였고 중국사(史)의 바둑광(狂)은 숱하다. 맹자는 며칠씩 식음을 전폐하기 일쑤였고 당 현종(玄宗)은 양귀비에게만 빠진 게 아니라 바둑에도 목까지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그 당나라 바둑이 신라에도 전파, 박구(朴球) 등 바둑 고수들이 즐비했고 특히 조선 숙종 때의 산수화가 최북(崔北)은 국수(國手)급 바둑광으로 만년에 바둑 수를 온전히 못 읽는 걸 한탄, 스스로 눈 하나를 빼버릴 정도였다.

바둑판을 '목야호(木野狐)'라 부른다. 나무로 깎은 여우라는 뜻이다. 뚫고 들어가 포위해 잡는 전술이 무척 간교하고 교활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3패 뒤 1승을 거둔 건 5대0 승리나 다름없다. 1승 추가 여부는 별 의미가 없다. 난가지락, 계속 즐기기 바란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