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20대 총선 공천 탈락으로 불명예 퇴진의 기로에 선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탈당 및 무소속 출마라는 배수의 진을 쳤다.
이 전 총리를 '패권주의 청산'의 정점으로 지목한 듯한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 체제에 정면 반발하며 초강수를 던진 셈이다.
이 전 총리가 15일 탈당 선언문에 "잠시 떠난다"고 표현한 데서 드러나듯, 이번 총선에서 반드시 명예회복을 하고 이후 정권교체에서 역할을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결단이 야권의 분열을 가져오리라는 지적도 나오는 점은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 전 총리는 1988년 13대 총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6선을 지낼 정도의 관록을 자랑하는 정치인이지만, 정치 행로는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1991년에는 당내 경선의 비민주성을 지적하며 탈당했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갈등설도 불거졌다.
2008년에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손학규 대표 체제가 출범하자 "한나라당 출신이 당 대표를 맡게 된 현실이 안타깝다"며 당을 떠났다.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한 2003년 민주당 탈당을 포함하면 네번 째, 이를 제외하면 세 번째 탈당이 된다.
특히 참여정부 이후로는 당 안팎에서 친노 세력의 '막후 실세'라는 비판에 끊임없이 직면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는 문재인 후보의 '친노 후보' 이미지가 문제되고 안철수 후보 측에서 '낡은 민주당'과 손잡기를 거부하며 이 전 총리의 거취를 후보 단일화의 걸림돌로 제기하자 당시 최고위원 전원과 함께 총사퇴했다.
대선 패배 후에도 당내에서는 비노진영을 중심으로 '친노 책임론'이 강하게 제기됐으며, 이 전 총리는 정계 은퇴 압박에 시달렸다.
중진용퇴론이나 험지출마론이 제기될 때에도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았다.
당 혁신위원회의 최인호 혁신위원도 지난해 9월 "당의 고질병인 계파싸움의 악순환을 끊는 마중물이 돼달라"며 백의종군을 촉구한 바 있다.
이번 '김종인 비대위'의 인적쇄신이 시작됐을 때에도 당 안팎의 시선은 이 전 총리에게 집중됐다.
1~2차 공천·경선자 발표에서도 이 전 총리의 이름이 제외되자 "배제된 것 아니냐"는 예측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이 전 총리는 12일 선거사무소를 개소하고 "정권교체를 위해 정치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출마의지를 밝히는 등 완강한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공천배제가 결정된 후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당을 떠나는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이같은 결정은 이대로 승복하고서 당내에 남는다면 자칫 김 대표 지도부가 내세운 '패권주의 청산' 명분을 수긍하는 것처럼 비쳐진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명예로운 퇴장'이 힘들어진 만큼, 지금은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에게 탈당 명분을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전 총리는 선언문에서 "김종인 비대위는 (공천배제 사유를) 정무적 판단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며 "저는 부당한 것에 굴복하는 사람이 아니다. 당과 민주주의, 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나쁜 선례를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친노 성향 지지자들은 이번 공천을 두고 "계파논리에 기반한 사천(私薦)"이라고 반발하고 있어, 이번 탈당에도 심정적 동조를 할 가능성이 있다.
이 전 총리가 19대 총선에서 세종시에 출마한 것 자체가 요청에 따른 결정이었다는 점도 그의 명분에 힘을 더하고 있다.
이 전 총리는 "당 지도부의 간곡한 요청으로 세종시에 왔다. 우리 당이 만든 도시인데 후보조차 낼 수 없었던 절박한 현실 때문"이라며 "세종시 완성과 정권교체는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이번 결정이 자칫 야권 분열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와 이 전 총리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당 관계자는 "야권 지지자들의 가장 큰 바람은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줘선 안된다는 것"이라며 "오히려 이번 탈당이 불명예스러운 결정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