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은 결국 일자리와 관계돼 있다. 우리는 이미 산업화를 거치며 시스템으로 대체돼, 현재는 자취를 감춘 직업에 대해 학습되어 있는 상태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숱한 직업이 사라졌지만 다양한 일자리 또한 생겼고,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산업화이자 기술의 개발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는 고유의 직군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물 안 개구리'라는 평가가 염려되기는 하지만 해답은 물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지구온난화와 각종 기상이변으로 작년 대한민국의 가뭄 피해는 최고조에 달했다. 104년만의 가뭄이라는 2012년에 이어 2015년까지, 단순 재해로 치부할 수준을 넘어섰다. 그 덕분인지 물 순환 전 과정에 대한 통합적 관리로 물 이용의 효율성 제고를 도모하는 통합물관리에 대한 법제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금이야 수자원을 관리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인류는 오랜 세월 강우를 하늘의 뜻으로 여기고 기우제를 지냈다. 그만큼 영향인자가 변화무쌍한 물관리는 변수에 민감하다. 이세돌 9단이 승리한 4국에서의 묘수에 알파고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던 것처럼, 물 산업이 변수에 약한 인공지능이 침범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인 이유다. 특히 통합물관리는 기능별, 기관별 관리체계의 통섭을 의미한다. 물 분쟁 및 갈등관계를 해소함으로써 국민 물 복지 향상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협상가가 될 수 없다. 이 또한 물산업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위상을 넘볼 수 없는 이유다.
물 산업 시장이 반도체시장의 두 배 이상 규모인 6천억 달러로 매년 5% 이상 급격히 성장하고 있으며, 향후 20~30년 내에 석유산업을 추월할 국가 핵심산업임을 감안할 때 그 업역은 실로 광대하다.
물 산업은 비단 수자원의 통합관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수도서비스는 어떠한가.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상대와의 소통과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만약 매뉴얼화되어 서비스가 일률적으로 제공된다면 어떨까? 차별적 서비스에 대한 민원은 대폭 감소하겠지만 고객응대 능력은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경우의 수가 무한대인 바둑도 선택은 결국 가로 세로 19줄 반상 위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고객응대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공공서비스는 품질을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분야가 많아 아직은 인공지능에 자리를 내줄 단계가 아니다.
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이다. 그리고 올해 UN에서 선정한 주제는 마침 'Water and Jobs'다. 물과 일자리. 실업률이 치솟고, 인공지능의 출현에 위기감을 느끼는 이 시점에서 물산업 육성을 통해 인류의 진일보를 꾀하자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다만, 새로운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돌아가는 선택적 선물이 될 것이다. 그것이 인류가 물 산업에 역량을 집중시킬 이유다.
/이규탁 K-water 팔당권관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