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사이사이 빈 틈으로 꽃샘 분다 아파트 속마다 사람 몸속에 꽃눈 튼다 갇힌 삶에도 봄 오는 것은 빈 틈 때문 사람은 틈 새 일은 늘 틈에서 벌어진다.
김지하(1941~)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봄날 민들레 꽃씨가 콘크리트 벽 사이에서 싹을 피운다. 이 싹은 눈부신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과 감동 그리고 희열을 보여준다. 꽃씨가 '사이사이'에서 발아하는 '빈틈'은 척박하지만 생명이 연원할 수 있는 공간이며, 그것은 실재하는 "아파트 속마다" 있듯이 "사람 몸속에"도 무의식적으로 기거한다. 무의식은 '갇힌 삶'이지만 그 무의식의 '빈틈'에서 봄과 같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예고한다. 김지하는 그의 회고에서 "세계에 대한, 인간에 대한, 모든 대상에 대한 사랑, 악몽도, 강신도, 행동도 모두 이 사랑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했듯이 "사람은/틈"에서 오는 바, 틈은 이 모든 생명의 시작이면서 끝이다. 우리가 맞이하는 새로운 일들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늘 틈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구멍 난 당신의 가슴에도 이제 곧, 한 송이 꽃이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