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들이대고 물건 던지기도
48%가 "신변에 위협 느꼈다"
담당 아이 잘못되면 '죄책감'
부천 초등학생 시신훼손 사건과 젖먹이 딸 학대 사망 사건, 평택 신원영군 사건 등 올해 초부터 경기도 곳곳에서는 아동학대 사건이 연일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동학대를 조사하고 관리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의 역할 문제에도 자연스레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한 '사회보호망'이 구멍 났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고통받는 아이들의 '구원투수'가 돼야 할 아보전 상담원들은 정작 각종 폭언과 격무로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경인일보는 아동학대 현장의 최일선에 나선 상담원들이 학대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되는 실정을 짚어보고, 이들이 진정한 '구원투수'로 거듭나 구멍난 보호망을 이을 수 있도록 방안을 찾고자 한다. ┃편집자 주
"어린 게 뭘 알아. 네가 애를 키워보기나 했어?"
경기도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A(28·여)씨는 술 취한 남성의 욕설을 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온 가정을 방문해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게 A씨의 일이지만, 그보다 이를 가로막는 '보호자들'의 폭언을 묵묵히 듣는 것으로 대부분의 일상을 보낸다.
20여 년 동안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욕설을 견디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는 날도 다반사. 칼을 들이대거나 물건을 던지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상담원들이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추행 위협에 노출되기도 한다. 학대피해를 조사하는 도중 아이 아버지가 대뜸 "어린 여자가 상담을 해주니 좋다"며 치근덕대는가 하면, 한 번은 밤중에 "젊은 여자 목소리가 듣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와 머리카락이 곤두서기도 했다.
늦은 밤, 으슥한 골목 안에 있는 아보전 건물을 나설 때마다 학대 현장에서 만난 누군가가 숨어 있다가 해치기라도 할까봐 겁도 난다. "오늘은 또 어떤 욕을 듣게 될지, 혹여나 맞지는 않을지 하루하루가 너무 무섭다"고 A씨는 속내를 털어놨다.
30대 남성 상담원인 B씨도 한숨부터 내쉬었다. "남자인 나도 온갖 욕을 듣다보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데, 여성 상담원들은 오죽할까 싶다"고 말했다. '앙심을 품은 학대 가해자가 아보전 건물에 불을 질렀다더라', '아이를 학대하던 아버지가 흉기를 들고 상담원을 위협했다더라' 하는 얘기를 들으면 "언젠가는 내 일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두려움은 그의 성격마저 바꿔놨다. 온순하고 차분한 성격은 자취를 감추고, 신경질적이고 욱하는 모습만 남았다. 동료 직원이 "더 이상 못하겠다"며 하나둘 떠날 때마다 사직서를 쓰고, 또 지운다.
평택 신군 사건 등이 터질 때마다 커지는 죄책감은 이들이 겪는 또 다른 고통이다. 지난 18일 만난 한 상담원은 "살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울먹였다. 이 상담원은 "담당하던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내가 제대로 못해서 그렇다. 나는 쓸모가 없다'는 생각에 우울해진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아동학대 방지의 '최첨병'이 돼야 할 아보전 상담원이 흔들리고 있다. 중앙아보전 조사결과 학대아동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부모 등으로부터 폭언·욕설을 들었다는 경우는 85%, 물리적 폭력을 당했다는 경우도 38%였다.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고 답한 상담원은 48%였다.
아이를 구하러 갔다가 오히려 또 다른 피해를 입는 상담원이 10명 중 8명 꼴인 것이다. 중앙아보전에 따르면 학대 피해를 조사하는 전국 상담원들의 평균 근무기간은 1년4개월에 불과하다. 지역아보전 관계자는 "폭언이나 폭력 등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강기정·전시언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