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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대구시 동구 유승민 의원(동구 을) 지역구 사무실에서 한 지지자가 휴대전화로 유 의원 관련 기사를 검색하고 있다. 이날 새누리당 지도부는 유 의원의 공천 문제를 또다시 매듭짓지 못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에서 4·13 총선 후보 공천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이는 유승민(대구 동을·3선) 의원 지역구와 이미 공천이 배제된 윤상현(인천 남을·재선) 의원의 지역구를 아예 '무(無)공천 선거구'로 남기는 방안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두 개 선거구에 대한 이 같은 무공천 시나리오는 '유승민 죽이기'와 '윤상현 살리기'라는 정반대 효과를 염두에 뒀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결국 유 의원에 우호적인 비박(비박근혜)계와 윤 의원에 동정적인 친박(친박근혜)계 사이에 또 하나의 불씨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유 의원 공천문제는 이제 사실상 잔류(불출마)냐, 탈당(무소속 출마)이냐로 초점이 옮겨지는 분위기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공공연하게 유 의원의 낙천 의지를 밝히면서 스스로 거취를 정리하도록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전날 밤 공관위 전체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유 의원의 예비후보 자진 사퇴를 기다리는 것이냐'는 질문에 "나는 (사퇴를)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유 의원은 칩거 모드를 장기간 이어가면서 자신에 대한 이 위원장의 압박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원내대표직 사퇴 때처럼 "내 목을 먼저 치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총선 후보등록 마감일(25일)이 불과 나흘 앞으로 다가온 21일까지 이 위원장과 유 의원의 힘겨루기가 이어지면서 당내에서고개를 드는 시나리오는 유 의원 지역구를 '진공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텃밭'인 대구 동을에 후보를 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유 의원이 거취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유 의원으로선 당에 잔류하려면 무공천 방침을 받아들여 불출마해야 한다. 반대로 출마를 강행하려면 탈당해야 한다. 유 의원이 탈당한다면 모양새는 자기 발로 걸어나가는 격이 된다. 공천에서 탈락해 쫓겨나갈 때보다 '피해자 이미지'가 적어 새누리당으로선 동정여론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무공천 지역이 돼 유 의원이 탈당할 경우 경쟁자인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 역시 탈당, 무소속 후보끼리 경쟁하는 기이한 구도가 형성된다. 이 전 청장은 승패와 무관하게 총선 이후 복당을 신청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친박계 의원은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공관위가 먼저 유 의원에게 물러날 것을 종용할 이유가 없다"며 "대구 동을을 무공천 지역으로 정하면 유 의원은 당에 남아도 국회에 못 들어오고, 무소속으로 나가면 당을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관위원인 박종희 제2사무부총장도 이날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무공천 지역 선정은) 하나의 가능성이 있는 얘기"라고 했다. 다만 "공당의 입장에서 공천을 안 하는 게 맞는지는 이제부터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막말파문'으로 이미 공천이 배제된 윤 의원 지역구도 유 의원 지역과 더불어 무공천 지역으로 남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윤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하기로 한 공관위는 이날까지 인천 남을 후보자를 공모하지만, 이날 오전까지 공천 신청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공천 신청자가 없으면 공관위는 현재 253개 지역구 가운데 공천 신청자가 없는 다른 지역(광주 광산을)처럼 인천 남을도 무공천 지역이나 우선추천 지역으로 정하는 길밖에 없다.

만약 이 지역에 후보자를 내지 않고 윤 의원이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그만큼 윤 의원의 당선 가능성은 커진다. 정치적 위기에 몰린 윤 의원으로선 기사회생의 기회를 얻는 셈이다.

윤 의원 지역구가 무공천 지역으로 남으면 19대 총선 때와 비슷한 경우가 된다. 당시 새누리당은 정태근(서울 성북갑)·김성식(서울 관악갑) 의원이 탈당하자 이들 쇄신파 의원의 지역구를 포함한 15곳에 후보자를 내지 않았다.

다만 유 의원과 윤 의원의 지역구만 '콕 집어' 후보자를 내지 않으면 '꼼수 무공천'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우려가 있어 새누리당으로선 부담이다. 자칫 수도권 등 다른 지역의 선거 구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태근 전 의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당시는 비상대책위원회가 쇄신파 요구를 받아들여 공천하지 않은 것이고, 윤 의원의 경우 공천이 부적절하다고 배제된 상태에서 당이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처사"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