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들의 우리에 대한 불가사의 중 하나는 들쭉날쭉한 영화 취향이다. 흥행의 성공을 장담했던 영화는 참패하고, 끼워 팔기 했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스타워즈'시리즈가 전 세계에서 유독 한국에서만은 1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2007년 3월 영화 '300'이 국내 개봉됐을 때, 이 영화의 흥행 성공을 점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영화는 '대박'을 쳤다. 292만9천400명이 이 영화를 보았다. '300'바람이 불었다. "스파르타여 ! 아침을 든든히 먹어라. 저녁은 지옥에 가서 먹을 것이다!" 등 영화 속에 등장한 대사들은 수많은 패러디물을 양산했다. 일개 무명배우에 불과했던 제라드 버틀러는 이 영화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스타가 됐다.
영화는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전쟁이 배경이다. 스파르타 전사 300명이 페르시아 30만 군대와 맞서 싸우다가 전멸한 테르모필라이 전투. 영화 '300'에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상체를 그대로 드러낸 스파르타 군인들의 황홀한 식스팩이 여성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지만 근거는 희박하다. 죽음을 불사하고, 임전무퇴의 자세로 조국 스파르타를 위해 싸우다 장렬하게 죽음을 맞는 300명의 전사들. 그 전사들을 이끄는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의 리더십 때문이라는 것이 오히려 설득력이 강하다. 수입사 홍보 카피도 이점을 파고 들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사들이 온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는 영화처럼 '300'명이다. 길조인지 흉조인지 몰라도 이거 기막힌 우연 아닌가. 18일 후면 우리는 4년동안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300명의 전사를, 아니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를 치른다. 이번 선거에는 당내 경선조차 나서보지도 못하고 탈락한 예비 후보자들, 시작도 못해 보고 뜻을 접어야 하는 불운의 주인공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자신들이 계파정치의 희생자며, 그래서 직접 유권자의 심판을 받겠다고 한다. 우리는 최근 한달여 동안 그들이 보여준 ' 피도 눈물도 없는' 공천 전쟁을 지켜봤다. 이제 공은 유권자의 손에 넘어 갔다. 우리 유권자들이 영화 취향만 변덕스러운 게 아니다. 어떤 '이변'이 일어나고 어떤 '파란'을 연출할지, 마음은 벌써 4월 14일 조간신문들의 헤드라인에 가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