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벼랑 끝에 섰다.
로마 원로원에 저항해 '루비콘 강'을 건넌 시저의 결단을 결행할 것인지, 결국은 파국을 피하고 타협하는 회군의 길을 걸을 것인지가 김 대표에 주어진 선택지다.
30년 정치 인생을 거치면서 대화와 타협을 정치의 요체로 여겨온 김 대표는 좀처럼 극한까지 가는 법이 없었지만 이번 사태의 전개 양상은 기존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엄포로 여겨졌던 공천장 직인 거부가 현실화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김 대표는 2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심각하게 당헌·당규를 위반한 공천이기 때문에 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무공천에 대한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측근들에게는 "민심에 따라 판단하고, 원칙을 지키겠다"고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고 한다.
준비도 철저했던 것으로 보인다.
친박(친박근혜)계가 독자적으로 최고위를 열어 공천안 추인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전날 부산에 내려갔던 김 대표는 하루 만에 서울로 귀경해 최고위를 소집하며 태연하게 당무를 봤다. 대표 궐위라는 해석의 여지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다만 최고위를 열어도 공천안 의결 요구는 거부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대표의 행보는 외형적으로는 친박계의 '패권주의'에 맞선 모습이다.
김 대표가 지키려는 이재오 유승민 의원은 박 대통령과 정치적 대척점에 서 있고, 반대로 출마 길이 막힐 '위기'에 처한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은 이번 총선에 급파된 '진박'(眞朴·진짜 친박)의 총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공천안 의결 거부가 관철되면 심지어 유 의원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에는 등록 후보가 없어 무투표 당선될 가능성도 있다. 그토록 제거하려 했던 유 의원이 오히려 무혈입성하며 역린을 건드리게 된다.
이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며 독자 노선을 시작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상향식 공천에 정치 생명을 걸었다면서도 비박(비박근혜)계가 우수수 낙천하는 과정에서 무기력했던 모습으로는 총선 이후 큰일을 도모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승부수라는 해석이다.
사실 김 대표는 지난 2014년 10월 중국 상하이에서 개헌론을 꺼냈다가 하루 만에 박 대통령에게 사과하며 체면을 구겼고, 올해 5월 '국회법 파동'에서는 당시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묵인했다는 지적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를 두고 비주류 정두언 의원은 이를 '30시간의 법칙'이라고 빗댔다. 어떤 행동을 취하든 30시간 이내에 입장이 바뀐다는 뜻이다.
그러나 친박계의 반발 계수도 강하다. 공천장에 직인을 거부하는 김 대표를 무너뜨리기 위한 당내 '친위 쿠데타'를 계획 중이다. 끝내 거부하면 손목을 잡아끌어서라도 직인을 찍게 할 태세다.
친박계 맏형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은 집단 지도체제다. 분명하게 말하는데 당은 독선적으로 운용되면 안된다"고 목청을 높여 '경고'했다.
지금은 강(强) 대강으로 대치하고 있지만 결국 논란이 되고 있는 5개 지역 가운데 일부 지역만 무공천으로 남기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기존에 공천안 의결이 보류된 5개 지역(서울 은평을, 서울 송파을, 대구 동구갑, 대구 동구을, 대구 달성)에 주호영 의원의 공천효력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 대구 수성을까지 후보 등록을 못할 경우 당이 입을 타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대표 직인을 지렛대 삼아 거래를 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