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글대디 버드 존슨은 직장을 잃고 낚시와 맥주를 즐기며 빈둥거리는 백수(白手)다. 선거시스템의 착오로 선거법에 따라 존슨에게만 재투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공교롭게도 존슨의 한표는 차기 대통령이 결정되는 중요한 한 표다. 하지만 존슨은 지지정당도 없고, 지지자도 없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 영화 '스윙보트'의 내용이다. 관객에겐 그저 그런 코미디 영화였지만 대책없는 멍청이 연기를 능청스럽게 펼쳤던 케빈 코스트너의 농익은 연기 덕분에 평론가들에겐 제법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를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은, 이 코미디 영화가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진지하게 던져 주었기 때문이다. 흥미위주로 선거를 다루는 언론의 상업성, 당선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의 이중성, 그리고 우매한 유권자의 속물근성을 영화는 비판하고, 조롱하고 있다. 한때 건달같은 삶을 살았지만, 이제 성숙한 민주시민이 된 존슨은 이렇게 말한다. " 단순히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사람이 아니라 말만 앞세우지 않는 더 큰 인물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우리의 문제를 앞에 서서 잘 헤쳐나갈 인물, 지혜를 가지고 국민을 잘 이끌어서 우리 자신과 세계를 평화롭게 해줄 인물, 우리는 그런 인물을 원합니다."
스윙보터의 사전적 의미는 '선거 등의 투표행위에서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다. 전에는 언디사이디드 보터(undecided voter)라고 했지만, 지금은 마음을 정하지 못해 흔들리는 투표자라는 의미에서, 플로팅보터(floating voter)와 같이 쓴다. 20대총선을 불과 1주일 남겨두고 스윙보터가 20~30%로, 역대 최고라는 소식이다. 사상 유례없었던 '엉터리 여론조사'도 스윙포터의 마음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다.
스윙보터들은 이번 공천과정에서 여·야가 보여준 한심함 때문에 정치에 극도의 혐오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전통적 여권 지지세력인 보수층 및 60대 이상의 유권자, 즉 스윙 그레이 보터(swing grey voter)들이 아예 투표를 포기하려는 기류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정치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이 불러온 비극이다. 정치권을 보는 유권자의 시선이 이제 분노를 넘어 좌절을 느끼는 단계까지 도달했다는 것을 한국 정치인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