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을 불과 몇 달 앞둔 1945년 2월, 일본 제국주의 만행을 온 천하에 고발하고 구국결의를 다지는 '평화성명서'를 발표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돼 '항적예비음모죄'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초를 겪은 최태병(81)선생은 광복 60년만에야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건국포장을 받는다.

59주년을 맞는 이번 광복절에는 최 선생을 비롯 경기도내 20명의 애국지사들이 반세기가 훌쩍 지나서야 공적을 인정받게 됐다.

그러나 이들 20명의 유공자 중 최 선생을 제외한 나머지 19명은 모두 타계한지 수십년이 지나버렸다. 그나마 이들은 다행인 경우다.

아직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애국지사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정부의 독립유공자 발굴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현행 독립유공자 지정은 담당부처인 국가보훈처가 증빙 자료를 수집해 공적심사를 거쳐 확정하는 정부주도의 발굴과 본인 또는 유족들이 직접 수집한 증빙자료와 함께 신청서를 제출해 심사·확정하는 방식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나 정부 자체조사를 통한 발굴보다 유족들의 신청에 의존하는 경우가 더 많다. 더욱이 유족들이 전대(前代)인 아버지 할아버지의 유공을 증명하기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런데도 올해 독립유공자 포상대상자로 지정된 148명중 72명은 본인이나 유족이 신청한 경우이고, 지난해에는 206명의 대상자중 무려 70%나 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유가족들은 선조의 독립운동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증빙자료를 찾으려면 재산까지 날릴 판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유공자로 지정돼도 정부 지원금은 월 120만원에 불과하고 사후에 유공자로 지정된 유족들이 받는 연금은 그나마 절반 수준이다.

독립유공자 모임인 광복회 경기지부 황갑수(84)지부장은 “이미 죽은지 수십년이 지났는데 이제와서 유공자라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정부의 적극적인 발굴노력으로 지하에 묻혀있는 수많은 애국동지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