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표용지 기표 방식도 각각이다. 터키는 EVET(yes)라 새겨진 도장을 찍지만 이집트는 볼펜(볼 포인트 펜)으로 V(승리) 표시를 하고 독일은 X자를 쓴다. 독일의 X는 크로이츠(kreuz→십자가) 표시다. 크로이츠 하면 하켄크로이츠(Hakenkreuz), 그 갈고리 모양의 나치 문양(卍)부터 연상돼 소름끼치지만 그냥 찌그러져 기운 십자가(X)야 그런대로 봐 줄 수 있다. 호주는 1 또는 2, 원하는 후보와 정당의 기호를 써 넣고 일본은 뻗친 정성으로 맘에 드는 후보자 이름을 써 넣는다. 글자가 틀려도 동명이인이 없는 한 인정하는 식이다. 미국은 주(州)마다 다르다. 최근엔 전자투표(DRE)나 광학 스캔 등 첨단 장비를 사용하는 주가 많다. 그런데 한국의 기표도장, 그 ㅅ자 표시는 무슨 뜻인가. 그냥 뜻도 없는 무늬? 더욱 흥미로운 건 투표함 函자도 '상자 함'자고 箱자도 '상자 상'자건만 중국에선 '투표함'이 아닌 '投票箱'이고 개표 역시 '개상험표(開箱驗票)'라고 한다. 驗票가 검찰(檢札)한다는 뜻이니까 상자를 열어 표를 검찰, 검산(檢算)한다는 거다.
어쨌거나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던 여론조사 전화 벨 소리, 시끄럽기 짝이 없던 유세전이 소란스런 '거국적 쇼'였다면 개표 드라마는 어떤가. 제작→대한민국, 연출 감독→선관위, 전 국민이 스태프 겸 관람도 겸하는 별난 드라마고 엄숙하고도 짜릿하고 잔인한 드라마 아닌가. 내내 조금씩 뒤지다가 막판에 뒤집는 역전승리 하며 엎치락뒤치락 끝까지 조마조마한 밤샘 개표 드라마라니! 당사자들은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 타들어가던 간이 반쯤 남은 건 아닐까. 그러기에 '투표는 탄환보다도 강하고 개표는 죽음보다도 강하다'고 했다. 영국의 명재상 처칠이 말했다. "평생 열네 번 출마했지만 선거 때마다 한 달씩은 감수했다"고. 10년 감수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실제로 10년 20년 감수 끝에 죽을 수도 있다.
오늘 점심, 저녁 모임 화제는 온통 총선 총평일 게다. 아무개가 떨어지다니, 그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 걔는 아슬아슬하게 졌더군 해가며…. 입맛 역시 꿀맛과 소태 씹는 맛으로 엇갈릴 게다. 투·개표 드라마는 끝났다. 19대 국회를 처벌하지 못한 게 한이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