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호남 혈투'에서 국민의당이 완승하면서 새로운 맹주로 떠올랐다.

호남은 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이자 야권 대선주자의 바로미터로 이번 결과는 향후 두 야당의 주도권 싸움과 대권 경쟁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에 더민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씨까지 동원하며 치열한 적자 경쟁에 나섰지만, 호남의 반문(반문재인) 정서에 힘입은 국민의당의 '녹색돌풍'을 잠재우지 못했다.

국민의당은 제20대 총선 개표 결과 광주 8석, 전북 7석, 전남 8석 등 호남의 총 28석 가운데 23석을 차지했다.

특히 광주에서는 선거전 여론조사에서 경합을 벌이던 권은희(광산을) 후보까지 당선되면서 8석을 싹쓸이했다.

반면, 더민주는 14석으로 선거를 시작했지만 전북 익산갑(이춘석)과 완주진안무주장수(안호영),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이개호) 3곳만 건졌다.

더민주는 호남 민심이 급격히 악화하는 상황에서도 최소 5~6곳은 기대했지만, 결과는 더 나빴다. 심지어 당선권으로 판단했던 전남 순천과 전북 전주을을 새누리당에 내줬다.

국민의당은 이번 공천에서 '뉴DJ'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더민주에서 탈당한 현역 의원들이 간판만 바꿔달고 출마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당선된 것은 호남 유권자들의 더민주 자체에 대한 피로나 혐오감이 누적됐음을 보여준다는 주장이 나온다.

더민주가 눈에 띄는 외부인사 영입에 실패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신인들을 공천하는 등 전략적 부재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있다. 김종인 대표의 비례 2번 논란 등 공천 파동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 김성수 대변인은 개표 상황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더민주를 어떻게든 응징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표심을 강하게 보여준 것"이라며 "그동안 더민주를 오랫동안 선택해왔는데 이제는 또 다른 야당을 선택하겠다고 경고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의당 이상돈 공동선대위원장은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호남 민심은 이미 문재인 전 대표와 이른바 친노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한 지 오래됐다"며 "그 부분은 (더민주가) 이제 회복하기 어렵지 않겠는가"라고 밝혔다.

이번 결과에 따라 앞으로 야권의 대선주자 간 경쟁도 격화할 전망이다.

일단 호남은 안철수 대표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가 '안풍(安風)'의 진원지였던 광주 호남에서 녹색돌풍을 이어가면 대권 가도에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문 전 대표는 대권 포기와 정계 은퇴라는 승부수까지 던졌지만 이미 기울어진 민심을 되돌리는 데 실패하면서 난국에 처했다. 그러나 대선까지 남은 기간이 많은 만큼 호남의 지지가 이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국민의당이 오랫동안 축적된 반문 정서를 동력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호남이 안철수 대표나 국민의당에 앞으로도 배타적인 지지를 보낼지는 국민의당이 전국적 세력이 될 가능성을 보여주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호남은 과거에도 제3당에 표를 몰아준 경험이 있다. 이번 총선 결과는 2006년 5·31 지방선거의 데자뷔라는 지적이 나온다.

5·31 지방선거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호남에서 총 의석 5개의 군소정당인 민주당에 사실상 완패했다.

열린우리당은 호남 지역 광역단체장 3곳 가운데 전북지사를 제외한 광주시장과 전남지사를 민주당에 내줬다.

기초단체장은 열린우리당이 광주에서 한 곳도 안 됐고 전북 4곳, 전남 5곳 등 총 9곳에서 당선됐다. 반면 민주당은 광주 5, 전북 5, 전남 10 등 총 20곳으로 2배에 달하는 단체장을 배출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민주당 소속으로 전남지사에 당선된 박준영 후보는 이번에도 제3당인 국민의당 깃발로 금배지를 달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