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별처럼 많은 시인들 중, '산업화와 근대화의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삶의 방식이 붕괴되어 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이 땅에 터를 잡고 있는 농민의 삶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 준 신경림의 '농무'가 창비의 첫 시집으로 채택된 건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산업화에 가장 크게 소외된 군상을 농민으로 봤기 때문이다. 1975년, 지금부터 40년전의 일이다. 걸쭉한 춤판이 끝나고 난 후, 모두 돌아간 빈 운동장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선거가 끝났다. 20대 총선이 막을 내렸다. 여당 지지자에겐 경악을, 야당 지지자에겐 축배를 내린 선거였다. 패자는 승자에게 꽃다발을, 승자는 패자에게 따듯한 위로를 할 차례다. 이제 너 나 할 것 없이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선거전이 시작되기 이전의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링컨은 투표용지를 '탄환'에 비유했지만 역시 투표용지는 탄환보다 더 무서운 위력을 발휘했다. 오만한 여당 거물들이 무너지고, '글쎄~'했던 후보에게 금배지를 달아준 선거였다. 언론은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에 혀를 내둘렀다. 오만했던 여당의 참패는 민의의 반영. 새누리당은 많은 것을 느끼고 반성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예뻐서 123석을 안겨 주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국민의당은 원내교섭단체를 만들고도 남는 의석을 얻었다고 해서 자만해서는 안된다. 무능한 양당 체제에 신물을 느낀 유권자들이 3당체제로라도 정국을 헤쳐나가라는 준엄한 의지로 받아들여야 한다.
선거는 막을 내렸다. 그런데도 왠지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다. 정말이지 '구경꾼들이 모두 떠나간 텅 빈 운동장'을 보는 느낌이다. 당선인들 면면이 '그나물에 그밥'으로 20대 국회라고 별수 있겠냐는 자조감 때문이다. 여·야 할 것 없이 대오각성(大悟覺醒)이 없는 한, 20대 국회는 더 처절하고, 더 치열한 싸움이 전개될 지도 모른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국가적인 불행이다. 그나마 정치인들보다 국민이 더 현명한 것은 다행이다. 대한민국은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나라. 국회의원보다 국민이 더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나라다. 20대 국회의원들은 '유권자는 현명하고 투표용지는 탄환보다 더 무섭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