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충격적인 총선 참패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에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사실상 지난 3년간 국정에 대한 중간 평가에서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든 만큼 국정운영 기조와 정책, 국회와의 관계설정 등에서 새로운 도전과 요구에 직면했다.
남은 22개월 임기에서 조기 '레임덕(권력누수)'을 최소화하고 국정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선 새로 펼쳐진 3당 체제 속에서 거대 야당의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박 대통령이 총선 이후 드라이브를 걸려던 각종 개혁 과제도 20대 국회 원구성 전까지 표류하며 추진 동력이 떨어질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온 구조개혁의 방향 등 전반적인 정책 기조에 대해서도 점검이 필요하다는 정치권의 요구도 빗발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아직 충격에서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14일 "아쉬운 결과이지만, 앞으로 더 노력해 3당 체제에서 국회와 국민을 설득하면서 국정 과제를 수행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청와대는 3당 체제에서 '캐스팅 보트'를 거머쥔 국민의당의 역할을 중심으로 한 구도에 주목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더라도 국민의당이 손을 들어주면 법안 통과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는 20대 국회에서도 중점 추진 법안들에 대한 변함 없는 추진 의지를 보였다.
정연국 대변인은 춘추관 브리핑에서 총선 결과에 대해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길 바란다"면서 "국민들의 이런 요구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해 온 노동·공공·교육·금융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을 위한 입법을 20대 국회가 뒷받침해달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나 이 같은 박 대통령의 의지가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박 대통령이 노동개혁 4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 대해 더민주는 반대 입장을 이어갈 전망인데다, 국민의당 역시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교육개혁의 핵심인 대학구조개혁법 역시 더민주가 반대해왔고, 정부가 최근 중점 법안으로 새로 들고 나온 규제프리존 특별법의 운명을 점치기 쉽지 않다.
정부·여당이 총선 직후 적극적으로 펼칠 것으로 보이는 경기부양책도 총선 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경제계에서 하반기 재정절벽에 대한 대비책이자 경기부양의 마중물로 솔솔 흘러나오는 추가경정예산안 편성론은 야당이 동의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게 됐다.
여당이 총선 공약인 양적완화를 위해 추진하려는 한국은행법 개정도 난망해진 상황이다.
청와대는 구조개혁을 위해 입법과 무관한 조치를 최대한 취한다는 방침이지만, 국회 권력의 이동 자체가 구조개혁의 추진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야당도 구조개혁 필요성에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으나, 방법론을 달리하는 만큼 야당식 구조개혁론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벌써부터 청와대에선 더민주가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을 밀어붙일 수 있다고 우려를 보내고 있다. 청와대는 더민주가 제기해온 법인세 인상 등 증세론 대응에도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당청 관계의 설정도 남은 국정운영 방향을 결정할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이 총선 패배의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서 당 장악력 역시 떨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공천에서 배제돼 무소속으로 당선된 비박(非朴 ·비박근혜계) 인사들의 복당론에도 무게가 실리면서 당 장악력이 훼손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사실상 당청 관계의 관건은 차기 당권의 향배에 달려있다.
친박계가 장악할 경우 청와대는 한숨을 돌릴 것으로 보이지만, 반대의 경우 당청 관계는 사사건건 대립하며 삐걱거릴 가능성이 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