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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후 광화문 '304낭독회' 참석
세월호참사 희생된 한 엄마는
"몇번씩 아이 따라가고 싶었지만
많은 분들 덕분에 버텨 고마워요"
미안함과 부담스러운데 고맙다니
그 인사 믿고 싶은 마음 간절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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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소설가
우리 동네 투표소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았고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 한분이 계단을 힘들게 올라가 투표를 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을 몰랐는지 내려갈 때도 계단을 이용했는데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타세요'라고 말했을 때는 이미 계단을 절반쯤 내려온 뒤였다. 고민하던 할머니는 다시 난간을 붙들고 내려갔고 그런 할머니를 도우러 진행 요원이 마중을 나왔다. 출입문을 나서며 할머니는 조금 앞에 가던 누군가에게 "아니, 이런 사람들도 붙들어주는데 남편이란 사람이 왜 붙들질 않아?" 하면서 불평했고 그제야 몇 걸음 앞에 가던 분이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할머니는 무정한 남편을 탓하며 문을 나섰는데 목련이며 벚꽃들이 환해서 그런 말들이 맹렬한 가시를 숨기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무뚝뚝한 그 할아버지는 한두 걸음쯤 앞서서 할머니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키고 있었던 게 아닐까.

투표를 마치고 오후의 시간은 광화문 광장에서 보냈다. 2년 전부터 작가들은 '304낭독회'라는 행사를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진행하고 있는데, 세월호 유가족을 지원하는 또 다른 단체의 초청으로 304낭독회 일꾼들이 낭독 행사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광장에서 낭독을 듣는 동안 시간이 흘렀다. 투표율이 예상보다 높다는 소식을 듣기도 하고 20대들이 투표장으로 많이 나갔다는 소식도 들렸다. 한 소설가가 "패배주의와 회의에 빠지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나쁜 일이다" 라고 말하는 사이 광장으로 놀러온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끼어들었고 어느 평론가가 우리가 4월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4월의 기억이 우리를 찾는 것, 그것은 누구도 부정하거나 지울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할 때 광장의 분수가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한 극작가가 문학은 말할 수 없는 자들의 것이라고 말할 때 나는 어쩌면 그 말이 내가 느끼는 한기, 도저히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함을 이기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직 6시는 오지 않았고 4월 13일 이후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절대 아주 차가운 마음으로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2년 전 세월호 참사 이후 긴 시간 동안 죄책감과 슬픔 속에서 사무치게 후회했던 건 세상은 어떻든 나쁘게 되기 마련이라는 그간의 냉소와 무기력이 아니었던가.

낭독회의 마지막 마이크 앞에 선 어느 희생 학생의 엄마는 "아직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를 따라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분들 덕분에 버티고 있어요"라고. 고맙다는 인사를, 정말 무언가를 돕고 난 사람의 흐뭇함으로 들은 사람은 아마 광장에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2년 전 우리가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미안해하고 그 참상에 슬퍼했지만 동시에 피해당사자들의 고통을 어떻게 감히 이해할 것인가, 우리가 대체 어떻게 도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회의하고 자책하지 않았나. 그래서 두어 걸음 떨어진 채로, 우리의 일상을 여전히 유지해가면서 뒤돌아보고 떠올려보면서 미안함과 그만큼 우리를 누르는 부담을 느끼지 않았나. 그런데 고맙다니. 그러면서도 고맙다는 엄마의 인사를 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내 자신을 느꼈다. 그런 거리, 그런 걸음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우리 사회 어딘가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 여전히 봄은 오고 엄마는 버틸 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그것이 무엇을 말해주든. 선거는 끝이 났고 이제 서로의 마음을 이렇게 확인한 채 다시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방향과 속력으로 걸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도울 수 있는 거리, 두어 걸음쯤 앞서가거나 뒤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회의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그런 믿음이야말로 우리에게 이 봄의 온기를 가져다줄 마지막 보루 아닌가.

/김금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