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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연출가
'해어화'는 잘 만든 영화다. 권번(기생학교)에 소속된 두 여자와 가요 작곡가임을 숨기고 사는 또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들 세 사람의 개인사를 시대사와 잘 엮었다. 어린 소율(한효주)과 연희(천우희)는 예기(藝妓)가 되어 평생 함께 하자고 다짐한다. 둘은 모두 가수 이난영(차지연)을 좋아한다. 영화 속 유일한 실존인물이다. 이난영의 대표곡 '목포의 눈물'(차지연 노래)과 함께, '봄아가씨'도 들을 수 있다. 이난영의 숨은 명곡이다. 앳된 목소리가 봄아가씨의 설레는 마음을 잘 그려낸다. 영화에선 가수가 된 연희와 관객으로 온 소율과 함께 부른다.

연희와 소율, 두 사람은 노래를 사랑하지만, 각자 느낌이 다르다. 연희는 가요에 맞고, 소율은 정가(正歌)에 맞다. 조선시대 지식층이 좋아했던 고상한 노래가 정가다. 권번의 정가선생을 어머니(장영남)로 둔 김윤호(유연석)는 정가보다는 가요를 좋아한다. 그는 최치림이라는 예명으로 가요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 속 유연석이란 배우가 대단하다. 연기도 잘 하지만, 연주를 잘 한다. 음악을 다룬 여러 영화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를 하는 장면은 때론 어색하다. 그 분야 전문가의 눈엔 더 그렇다. 유연석은 달랐다. 피아노를 치고, 작곡을 하는 장면에 진정성이 배어있다.

'이 시대의 아리랑'을 만들고 싶은 윤호가, 그런 노래를 불러줄 수 있는 파트너가 연희라는 걸 알았을 때의 연기에 깊이가 있다. 배우의 표정이 아니라, 작곡가의 심정이다. 그는 영화에서 분노하듯 아리랑을 연주한다. 출정하는 일본 군인이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윤호는 피아노 앞에서 아리랑을 연주한다. 아주 짧지만, 꽤 강렬하다.

'해어화'는 가요와 정가를 같은 비중으로 다룬다. 소율은 애인도 빼앗기고, 노래도 빼앗겼다.

무엇보다도 자신도 부르고 싶은 '조선의 마음'을 부르지 못해서 자학한다. 사랑이라는 거짓말에게 속았다고 생각하는 소율은 윤호에게 '사랑, 거짓말'이란 정가를 들려준다. 이 노래는 여성이 부르는 정가로, '계면조 평거'의 노래말이다. 윤호는 소율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진정 소율이 잘 부를 수 있는 가요를 작곡한다. 같은 제목의 노래로, 정가의 창법을 잘 살리면서도, 대중적 감성이 살아있는 노래다. 세월이 흘러서, 일제에 의해 금지곡이 된 '조선의 마음' 음반이 발굴된다. 아울러 '사랑, 거짓말'도 가요담당 피디에 의해 발견된다.

"그 때는 왜 그걸 몰랐을까요?" 자신의 노래 '사랑, 거짓말'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 가요담당 피디 앞에서, 노년이 된 소율은 그리 말한다. 세상엔 일단 자신에게 맞는 음악이 있는 듯하다. 소율은 정가에 맞는 발성와 감성, 연희는 가요에 맞는 발성과 감성을 지녔다. 그래서 소율이 연희가 될 수 없고, 연희가 소율이 될 수 없었다. 영화는 이렇게 '가요'과 '정가'를 함께 생각하면서, 서로 다름을 얘기하는 것 같다. 그러나 결국 장르와 무방하게, 진실이 담긴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킴을 역설한다.

주변에서 한 장르에 대해서 깊이 있게 잘 아는 음악전문가를 본다. 그런데 때론 이런 사람 중에는, 타 장르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도 낮게 보는 편견도 발견한다. 그들도 언젠가 그리 말하게 될까? "그 때는 왜 그걸 몰랐을까요?" 가요와 정가는 참 다른 노래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 다른 노래를 참 아름답게 감싸고 있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참 볼 만한 영화다.

/윤중강 평론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