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매력은 시학의 원천이자 이야기의 고향
영원무궁 이어갈 가치 살리는 대원칙 지켜야
흔히 섬을 예술과 문학, 특히 시적인 영감을 주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섬을 주제로 한 시문학 작품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섬에서 나고 생활한 시인들의 활동이 의외로 역력하다. 덕적도의 장석남, 문갑도의 이세기, 자월도의 김영언 시인을 떠올려 보면 섬은 시인을 기르는 땅이라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또 요절한 기형도 시인 역시 연평도 태생이라는 걸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장석남에게 덕적도는 시심의 요람이다. 밀물이 모래를 적시는 소리에서 '아버지'를 느낄 정도로 그의 시는 섬에서 생활한 원형체험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세기 시인의 시집 '먹염 바다'나 '언손'에 나타난 정서도 섬사람들의 터전인 바다와 갯티 그들의 체취인 갯내로 오롯하다. 자월도 출신 김영언의 시집 '아무도 주워 가지 않는 세월'에는 서해의 섬과 섬사람들의 정서를 생생하게도 옮겨 놓았다. 섬에서 태어나 섬사람들의 생활과 말을 거듭해서 들어 왔으며,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시의 리듬과 조화시키는 비결을 터득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들의 작품들이 그저 유년체험이나 정서의 원천이나 향수를 환기하는 대상으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날로 척박해지는 섬 생활의 고통이 있으며, 정부나 기업이 관광과 개발의 이름으로 오래 살아야 할 섬을 망가뜨리려는 소행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도 크다. 장석남의 '덕적도', 이세기의 '굴업도', 김영언의 '한리포 전설'은 시인들의 꿈집이었던 아름다운 서해의 섬들이 사라질 위기에 대한 긴박한 경고이자 세상에 보내는 절절한 호소문이기도 하다.
섬은 바다로 둘러싸인 땅이다. 물길로 어디로든 갈 수 있을 듯 하지만 실은 하루 두차례 드나드는 조석(潮汐)처럼 하루 한두 차례의 뱃길로만 사람이 오갈 수 있는 고립된 장소이다. 절해(絶海)의 장소성은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연을 더 깊이 생각하고,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더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게 만든 것인지 모른다. 섬사람들은 이웃의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안다고 말한다. 아침저녁으로 마주치지만 정작 이웃의 속사정은 모르고 살아가는 도시인들과 달리 섬에서는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다.
섬은 마지막 남은 이야기의 고향이기도 하다. 서해의 섬에는 망구할매나 개양할미같은 창세 신화로부터 섬과 지명유래담은 물론 조선시대의 전설까지 숱한 이야기들이 아직까지 전승되고 있다. 도시에서는 개발의 광풍에 휩쓸려 사라지고 없는 풍속이다. 섬의 매력 중의 하나는 마르지 않은 시학의 원천이자 이야기의 고향이라는 점이다. 섬 관광과 섬 개발 사업의 미명하에 섬이 가진 자연과 경관의 매력은 물론 섬의 풍속과 섬사람들의 마음씨까지 훼손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물론 섬 주민들이 언제까지 불편한 교통과 낙후한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주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가꾸어 가되, 영원무궁 이어가야 할 섬의 가치들도 살려 나가야 한다는 대원칙을 지키는 도서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말이다.
/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