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조선의 국왕인 고종은 전라감사 김학진에게 전권을 위임하여 농민군과 협상하라고 하였다. 전주성을 점령한 전봉준과 농민군은 백성이 진정한 주인이 되어 상하 차별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를 희망하였고 조정과 폐정개혁안 12조를 협의하고 선포하였다. 노비제도에 대한 혁파와 과부의 재가 허용, 그리고 탐관오리에 대한 처벌 등이 그 안에 포함되었다. 귀한 자와 천한 자가 없는 평등세상, 바로 당시 백성들이 꿈꾸던 사회로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 폐정개혁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집강소의 설치였다.
집강소는 전라도 53주(읍)의 관아 안에 설치된 일종의 민정기관이었다. 집강(執綱)이란 각 고을마다 설치한 동학의 조직 접(接)의 수령인 접주를 말하는 것이다. 이 집강소의 설치로 동학교도가 각 읍의 집강이 되어 지방의 치안과 행정은 사실상 이들이 담당하게 되었다. 전주에는 집강소의 총본부인 대도소(大都所)를 두고, 집강소에는 분장을 나누어 집강 밑에 서기·집사·동몽 등 임원을 두어 행정사무를 분담케 하였다. 오늘날 국민투표와 거의 같은 것으로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
호남지역에서 실시한 집강 선발은 기존 수령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백성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차분히 수령을 선출하였다. 이로써 관료들의 고압적 행정은 쇄신되고 실질적인 백성의 삶을 헤아리는 지도자가 모든 고을을 책임지게 되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참정권을 얻고 올바른 지도자를 뽑기 위한 목숨을 건 투쟁의 결과였다. 결국 백성들에 의해 선발된 지도자가 백성들의 실제적 삶을 나아지게 올바른 정치적 행위와 행정을 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우리 민족사만이 아닌 세계사적 자랑거리이다.
이와 같이 위대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는 이를 계승 발전시킬 책임과 의무가 있다. 얼마 전 우리는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실시하였다. 그간의 여론조사와 달리 충격적인 여소야대의 정국으로 민심의 결과가 나왔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적 무능과 민주주의의 후퇴 그리고 개성공단 폐쇄 등 남북관계의 파탄이 국민들의 마음을 현 정부와 여당에서 떠나게 한 것이다. 그렇다고 야당이 잘해서 그들을 지지해준 것이 절대적으로 아님을 야당 모두는 알아야 한다. 이제 새롭게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들은 120여년 전 백성의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피를 흘린 수많은 선조들을 기억하면서 민심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