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가방은 방 한구석에 내팽개치고 친구들과 산과 들로 쏘다니다가 해질 녘이 돼서야 친구들과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지요. 이렇게 온종일 밖에서 뛰어놀다 보면 멀쩡한 양말 뒤꿈치는 이내 뻥 뚫려 있기가 일쑤였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흙강아지가 돼 돌아온 내 옷가지를 빨아 햇볕에 잘 펴서 널었다가 저녁이면 마른 옷을 곱게 접어 장롱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뚫어진 양말은 비슷한 천을 대 깁거나 아주 심하게 해어져서 깁기조차 어려운 것들은 버리고 성한 양말끼리 색과 짝을 맞추어 다시 신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새로이 짝이 된 양말도 이내 내 발을 거치면 양말 뒤꿈치는 어김없이 뚫어지곤 했습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어두침침한 전등불 밑에서 뚫어진 양말을 꿰매시던 어머니가 푸념 섞인 목소리로 혼자 말씀하십니다. "이 녀석 발바닥엔 가시가 돋쳤나? 왜 이렇게 허구헌날 양말이 뚫어져!"라고. 그러면 옆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는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시면서 그저 "허허"하면서 헛기침만 하셨지요.
그 당시 신었던 양말들은 대부분 무명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잘 뚫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됐지만 당시 어린 나는 어머니의 푸념이 행여 엄하기만 하셨던 아버지의 꾸지람으로 이어질까 찍소리도 못하고 죄인 마냥 그저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눈치만 보곤 했었지요. 그런 행동과 표현들이 그 시대를 산 부모들의 일상이었고 그 속에 자식에 대한 사랑도 함께 묻어 있다는 사실을 어른이 돼서야 알게 됐습니다.
이젠 오래전에 고인이 되시어 부모님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고 해가 갈수록 그 모습 또한 희미해져 갑니다만 지금도 양말을 신을 때면 문득문득 그 시절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에고 그립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더 보고 싶은 부모님!
이번 어버이날에는 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선산을 찾아가 날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은혜에 감사드리고 산소 옆에 누워 조용히 잠을 청하렵니다. 가장 돌아가 보고 싶은 내 어린 시절 뚫어진 양말을 꿰매며 푸념하시는 어머니와 그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는 아버지가 꿈속에서 나타나시길 간절히 바라면서….
/우천제 용인시 환경관리사업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