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형이었네/아버지 딸인 인형으로/남편의 아낸 인형으로/그네의 노리개였네//노라를 놓아라, 순순히 놓아다구/높은 장벽을 헐고/깊은 규문을 열어/자연의 대기 속에/노라를 놓아라//나는 사람이라네/남편의 아내 되기 전에/자식의 어미 되기 전에/첫째로 사람이 되려네//나는 사람이로세/구속이 이미 끊쳤도다/자유의 길이 열렸도다/천부의 힘은 넘치네//아아, 소녀들이여/깨어서 뒤를 따라오라/일어나 힘을 발하여라/새날의 광명이 비쳤네
나혜석(1896~)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진정한 주체'란 자신을 억압된 세계에서 풀어내고 자기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관습화된 제도와 사회적 규범이라는 일상성에서 빠져나온다는 건 쉽지 않다. 오히려 거기에 얽매여 자신의 인생을 살기보다는, 타자라는 누군가에게 구속된 이른바 '인형의 시간'을 보낸다. 인형은 사람의 형상을 닮은 조형물이지만 그 자체로 인격이 없는 '비무형의 비인격체'다. 인형 같은 삶은 '아버지의 딸' '남편의 아내' '자식의 어미'인바, 한낱 '타자의 노리개'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의 대기'를 향해 인형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높은 장벽을 헐고' '깊은 규정의 문을 열고' "나는 사람"이라고 선언하며 '날 노라'라고 외치며 커밍아웃할 때 가능해 진다. 그리하여 선구자는 '새날의 광명'을 바라보면서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 자신을 먼저 십자가에 매단 자"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