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김포 관할 인구 420만 '원외재판부' 조차 없어
섬주민 반나절이상 걸려 서울행 사회·경제적 손실
법원행정처, 국감서 필요성 인정 6개월째 '깜깜'


이종엽
이종엽 인천변호사회 부회장
서울 서초동에서 일어난 도박사건의 변호사 선임비 50억원 분쟁이 법원과 검찰의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과 법조 브로커 등이 주도한 법조게이트로 번져가고 있다. 금전만능주의, 거액의 돈과 인맥을 동원한 전근대적 사건청탁 문화가 아직도 횡행하고 있는 서초동 법조타운의 혼탁하고 후진적인 복마전을 지켜보며 시민의 한사람으로 심한 좌절감과 함께 상대적 박탈감을 감출 수 없다.

사법에 관한 상대적 박탈감은 지역적으로도 존재한다. 바로 사법서비스에 대해 인천시민들이 가지는 상대적 박탈감이 그것이다. 인천은 상주인구 300만 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서울, 부산에 이어 전국 3위의 거대 인구를 가졌고, 관할 면적과 경제규모 3위의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3위의 거대도시가 되었다. 인천지방법원이 관할하는 부천과 김포까지 합하면 인구는 420만 명에 달한다.

그런데도 인천에는 고등법원은커녕 고등법원의 하위기관인 원외재판부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인천에서 발생한 큰 사건 사고와 법적 분쟁의 당사자들은 인천을 알지도 못하는 서울고등법원을 서울 한복판으로 쫓아가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수원은 이미 2014년에 경기고등법원 유치가 확정되었고, 3년 후엔 고등법원이 설치된다. 고등법원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광역시는 인천과 울산밖에 없다. 심지어 전주, 청주 등에도 원외재판부가 설치되어 있다.

인천은 경제규모에서도 이미 전국 3대 거대도시이고, 인구 증가세는 계속되고 있다. 서해안을 따라 형성되고 진행 중인 경제자유구역 등 대규모 개발지구로 인구가 꾸준히 유입되면서 인천 구도심과 부천, 광명 등을 통과해야 하는 서울고등법원으로의 교통 접근성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특히 강화도, 덕적도, 대청도, 백령도 등 크고 작은 섬이 많은 지리적 특성 탓에 섬 주민들은 연안여객선과 육지 교통수단을 갈아타면서 반나절 이상이 걸려야 서울고등법원에 도착해 재판을 받을 수 있다. 생계 지장은 막대한 사회적·경제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이 없는 사법은 존재할 수 없고, 국민의 요구를 외면한 사법서비스는 국민을 등 돌리게 하고 만다. 대한민국 3대 도시를 넘어 14억 세계 최대시장의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인천에 원외재판조차 배려하지 않는 것은 차세대 경제중심지이자 대한민국의 미래, 인천에 대한 직무유기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한 인천의 많은 시민단체와 경제단체, 로스쿨과 학계, 지자체, 지역 법조계 등 각계각층이 한 목소리로 조속히 인천에 원외재판부를 설치하라는 촉구 결의문을 채택하고, 인천시민 10만인 서명부와 함께 법원행정처에 전달한 지 벌써 8개월이 훌쩍 지났다.

법원행정처는 작년 10월 초 뒤늦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인천에 원외재판부를 설치하기 위한 요건은 구비됐다'고 발언해 사법서비스 측면에서 문제가 있음을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그 후 6개월이 지나도록 법원행정처가 이 문제에 대해 결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사이 300만 인천시민과 부천 김포 시민들의 사법접근성 개선을 촉구하는 여론의 압력은 더욱 비등해지고 있다. 13명이나 되는 인천의 국회의원들도 여야를 넘어 힘을 한데 모아야 한다.

인천지역에 상주하며 인천을 알고 인천의 사정과 정서를 이해하는 법관들로부터, 인천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는 300만 인천시민들의 목소리를 더이상 외면해서는 안 되겠다.

/이종엽 인천변호사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