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료·악기·음향장비 '無'
市 '거리 예술가 모집' 논란
일부 지자체, 헐값공연 압박
23%가 '예술활동 수입 전무'
정당한 대가 받는 풍토 필요


최근 인천지역 문화계에서는 인천시가 재능기부 방식으로 '인천거리 예술가'를 모집한 것이 논란이 됐다.

시가 '버스킹 존'(길거리 공연 장소)을 운영하기로 하며 무대에서 공연 할 예술가를 모집한 것인데 모집 요건이 문제가 된 것이다.

출연료도 없고 악기나 음향장비 지원도 없는 재능기부 방식이면서도 까다로운 심사와 의무 공연 횟수를 정하는 등 지켜야 할 것이 많았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예술가에게 해주는 것은 없으면서도, 이것저것 당당하게 요구하는 시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며 문화·예술 활동을 대하는 시의 시각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시는 이번 공모 대상은 전문 예술가나 단체가 아닌, 아마추어 동호인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이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예술 활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재능기부' 강요에 지역 문화계가 멍들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재능기부' 용어 사라졌으면…

지역에서 10여년 동안 음악공연 단체를 운영해 온 대표 A(46)씨가 주변 사람들에게서 안부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재능기부 좀 해달라'라는 말이다.

A씨가 말하는 당당하게 '재능기부'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유형은 대부분 이렇다.

"비용은 주지 못하지만, 사람들 많이 모이니까, 찾아와서 단체 홍보도 좀 하고…"라는 식이거나, "재능기부 해주면 다음번에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다음에 사례를 해주겠다는 식이다.

한 지자체로부터는 지속적인 재능기부 강요에 수개월을 시달렸다. 최근에는 수위가 협박에 가까워졌고 이를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헐값에 공연을 해야 했다.

하지만 피아노와 음향장비 대여비를 제외하고 나니 그가 손에 쥔 돈은 없어 A씨는 자신의 개인 돈으로 단원들의 출연료를 챙겨줘야 했다.

A씨는 "언제부터인가 '공짜로 해주세요'라는 말 대신, '재능기부 좀 하세요'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며 "재능기부라는 단어가 기부의 의미는 없고 공짜라는 뜻만 남아 한참 변질된 의미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부라는 것은 경제적 안정이 확보된 상태에서 내가 하고 싶을 때 해야 하는 것인데, 예술가들의 형편이 대부분 어렵다"며 "아예 재능기부라는 용어가 문화계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다"고 말했다.

■ 4명중 1명이 수입 '0'원

기부는 좋은 일이지만, 상당수 예술가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부를 강요받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 예술인 실태조사'를 보면 인천·경기지역 예술인들 가운데 지난해 예술활동을 통한 수입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23.1%로 나타났다.

경기·인천 지역의 예술가 4명중 1명은 자신들의 작품 활동으로는 경제 수익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응답자의 96% 이상이 지난해 1회 이상의 작품 발표를 했다고 응답했다.

소득별로 보면 500만원 미만은 23.4%, 500만원~1천만원 미만은 12.0%로 나타났는데, 인천·경기지역 예술인의 70.5%가 수입 1천만원 이하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경제적 여유는 없지만 경기·인천지역 예술인 44.7%가 지난해 자원봉사(재능기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 예술도 노동

예술인들은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노동으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통 예술단체 대표 B(49)씨는 "기부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 것인데, 그렇지 않은 곳에서도 재능기부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노동의 결과물로 보지 못하는 것 같은 인식이 팽배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같은 분위기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문화가 있는 날'에 각종 무료 공연과 티켓 할인 등이 많아지며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재능기부 요구를 거절하거나 합당한 대가를 요구하면 돈만 밝힌다고 비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예술가의 재능은 결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재능을 계발하기까지 큰 비용과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재능을 유지하는데도 돈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