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늦게 도착해 오롯이 엄마와 둘 만의 시간을 가졌다. 난생 처음 손을 꼭 잡고 밤새 엄마의 얘기를 듣고 맞장구를 쳤다. 엄마는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반복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엄마의 뇌 회로가 연결 됐다 안 됐다 하는 것 같았다. 엄마의 반복된 이야기를 멈추게 하는 방법은 먼저 질문을 하는 것이다. "식사는 잘하세요?" 엄마한테서 나올 말을 뻔히 내다보면서…. 한데 엄마는 평소 하던 "잘 먹는다. 걱정마라" 대신 "나는 굶는 걸 잘한다. 젊었을 때부터 익숙해서 굶어도 잘 견뎌" 라는 게 아닌가. 일순, 둔중한 뭔가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했다. "엄마 젊었을 적엔 시절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라고 하려다 그만뒀다. 평생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 엄마가 당신만을 위해 무엇을 한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음을 알기에. 게다가 한적한 시골마을이라 구판장이나 구멍가게도 없어진 지 오래됐고 마트는 걸어가기에는 너무 먼 곳에 있다. 먹거리를 사기 위해서는 하루에 몇 번 오가는 버스를 타야 하고 버스시간을 맞춰야 하고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이 또한 만만치 않다. 언니가 자주 들른다고는 하나 한계가 있을 터였다.
새벽 무렵, 엄마는 잠이 들었고 나는 냉장고를 점검하고 엄마 머리맡에 놓여있는 전화번호부를 뒤적였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마트와 우유대리점, 식당 등 전화번호를 휴대전화에 입력했다. 엄마에게 필요한 것을 주문 배달할 심산이었다. 이럴 때 중국에서 신종사업으로 번지고 있다는 '부모님 방문 서비스'(수고비를 받고 자식들을 대신하여 부모님을 찾아뵙는 방문서비스)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개운치 못한 자식 역할이기는 하겠지만…. 아쉬움을 가득 안고 집에 돌아와 어버이날 아침,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본 지 얼마 안됐지만 아주 반가워하시고 기뻐하셨다. 음성 너머로 엄마를 그려가며 통화하는 딸에게 '홀로 계신 엄마를 어떻게 해드려야 하나'하는 숙제가 남았다.
/김희정 시민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