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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연출가
재즈는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한국' 재즈라고 하면 달라진다. 잘 모르거나, 크게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재즈의 역사에 관해 체계적인 정리가 이뤄지지 못한 탓도 있다. 한국재즈와 관련해서 얘기할 때도, 몇 명의 특정인물과 몇 개의 특정장소에 치우쳤다. 이런 아쉬움을 해소해 줄 책 한권이 나왔다. '한국재즈 100년사'란 종이책이다. 저자 박성건이 대단하다. 그간의 재즈와 관련한 신문과 잡지를 섭렵했다. 그의 눈에는 신문기사뿐 아니라, 신문광고까지도 소중했다. 재즈와 관련된 인물들과 만나면서, 거기서 한국재즈를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얻어낸 것 같다. '한국재즈 100년사'는 그의 이런 열정과 노력의 결과물이다. 재즈애호가들은 이 책을 통해서 한국재즈의 시공(時空)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이 책은 이 땅에서 재즈를 위해 애썼던 많은 인물들을 불러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장르가 대중에게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개인이나 국가가 후견인(patron)이 돼 줘야한다. 조선의 재즈에선, 백명곤이 그런 역할을 했음을 알려준다. 1930년대, 조선의 음악은 매우 다양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역할을 했던 인물이 김해송(1911~1950)과 손목인(1913~1999)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음악인을 능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크게 인정을 받은 두 음악인들의 활약에 관해 소상히 알게 해준다.

1960년대 이후의 재즈는 어떠했을까? '카바레'란 말을 언급하는 것이 편치 않던 시절이 있다. 하지만 동화카바레의 김광수악단과 은성카바레의 엄토미악단을 통해 한국의 재즈음악이 점차 전문성을 획득했음을, 이 책은 당당하게 밝힌다. 호텔의 나이트클럽과 함께, 한 때 인기절정이었던 한일회관과 뉴욕회관이 실상 재즈음악의 소통 공간으로서 역할을 했음을 알려준다. 당시 국도극장에서 공연했던 극장식 쇼가 결국은 재즈음악이 밑바탕에 깔려 있음도 확인하게 해준다.

한 때 재즈라는 음악은 정치적으로 불온(不穩)한 것이었고, 재즈의 소통공간은 사회적으로 불륜(不倫)의 온상처럼 취급했다. 그러나 정작 이런 공간이 있었기에, 한국재즈사에 있어서 특별히 언급되어야 할 불후(不朽)의 명곡들이 탄생됐음을 얘기한다.

"그 많던 재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개의 극단적인 마음이 든다. 과거 재즈뮤지션들의 무한한 열정에 대한 감동을 한다. 반면 대한민국의 재즈현실에 대한 회의적인 의문이다. 지금도 재즈를 좋아한다는 게 마치 자유스런 영혼의 소유자처럼 치장된다. 한국의 재즈페스티벌은 연중행사로 정착돼서 열광하는 사람들이 미어터진다.

하지만 정작 재즈가 진솔하게 소통 할 공간의 실상은 어떠한가? 서울 홍대주변의 '문 글로우'는 이미 문을 닫았다. 인천과 경기지역에서 전통을 자랑하는 재즈클럽 '버텀라인'은 어떠한가? 한국의 재즈뮤지션은 이 공간에서 연주하는 걸 큰 기쁨으로 여긴다. 이 재즈클럽의 건물은 백년 된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다. 말하자면 '근대문화유산'이다. 이 땅에서 시작한지 백년이 되가는 재즈도, '근대문화유산'이다. 한 곳에서 33년을 버텨온(!) 버텀라인을 보면서, 한국재즈에 관한 극단적인 두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허상과 실제 사이의 괴리감이다.

재즈애호가가 '비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 열광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재즈에 관한 다큐 '브라보 재즈라이프'(2010)에는 더욱 경의를 표하길 바란다. '한국재즈 100년사'가 이 땅의 음악인의 필독서가 되길 바란다. 거기에 한국역사가 있고, 한국재즈가 있기에 그렇다.

/윤중강 평론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