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만날 수밖에 없는
'사람 냄새' 나는 골목 구조…
우리 주변엔 수많은 아파트로
공동체 붕괴·고립된 '섬' 생겨
후손에 회색공간만 물려줄순 없다
혼족(나홀로족), 혼밥족(혼자 밥먹는 사람들)이라는 용어가 생소하지 않은 요즘이다. 자꾸 이렇게 '홀로 되는 것'에는 아파트라는 주거공간 탓도 무시할 수 없다. 아파트는 외로움의 상자다. 아파트 천국이 돼버린 우리나라는 대부분 사람들과 그 자식들이 그 상자 속에서 태어나 젊음을 보내고, 결국 그 상자 속에서 생을 마친다. 내 자식만 해도 격자형 간선도로가 뻗은 아파트 숲 속에서 태어나 이웃을 잘 알지 못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손을 잡고 걷다가 이웃을 만나 따듯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별로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다녔다. 혼자 사는 게 익숙하게 된 데는 아파트 영향이 그만큼 크다.
우연히 '동네 걷기, 동네 계획'이라는 책이 손에 잡혔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걷다가 이웃을 만나 수다를 떨 수 있는 그런 동네를 만들기 위한 밑그림'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박소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의 책이다. 그 책을 읽은 후, 구불구불한 골목과 따듯한 이웃, 동네 친구들과 쌓았던 넘치는 우정, 친구 부모들로부터 받았던 따듯한 응대. 때가 되면 밥 먹으라며 여기저기서 친구 이름을 부르던 이웃집 아주머니의 목소리. 그런 풍경들이 문득 그리워졌다. 그곳을 찾아가 그 길을 걷고 싶어졌다. 그런데 연립주택이 난마처럼 얽혀 있어서 자동차 한 대 드나들 수 없는 그런 곳으로 변해있지 않을까? 낡은 차 한대가 입구를 '턱' 막고 있어 총총걸음을 하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는 그런 곳으로 바뀌었다면? 그럴 바에는 차라리 기억 속에 묻어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늘 마음속에만 묻어두고 선뜻 찾지 못한, 옛날옛날 내가 살던 동네 말이다.
하지만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나는 용기를 내 내가 살았던 동네를 찾아갔다. 그러나 동네 앞에서 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낡은 차가 동네 입구를 가로막아서가 아니다. 그 동네가 너무도 완벽하게 그곳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구불구불한 골목길도, 심지어 내가 살던 집도 심하게 낡았을 뿐 그대로였다.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정확하게 47년 전으로 돌아간 착각에 빠졌다. 병화 병철이 형제가 살던 집도, 학태네 집도, 기봉네 집도 그대로여서, 그들이 금방이라도 대문 밖으로 뛰어 나올 것 같았다. 까르르 거리는 그들의 웃음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듯했다.
나는 넋 나간 사람처럼 동네를 마구 돌아다녔다. 그때는 몰랐지만, 가만히 보니 동네는 대문을 열고 나오면 이웃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웃에 관심을 갖지 않으려 해도 가질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였다. 동네가 그나마 온전하게 살아 남은 건 성곽에 붙어있어 도시개발에서 비켜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후된 지역으로 치부되곤 했지만, 덕분에 동네는 '사람 냄새'가 풀풀 나는 건강한 동네로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우리 주변에 무수히 널려있던 이런 정겨운 동네가, 이런 골목길이 아파트 개발로 상당수 사라져 버렸다. 공동체 사회는 무너졌고, 이웃과 이웃은 단절됐으며, 여기저기에 고립된 '섬'이 생겼다. 1인가구 급증은 거부할 수 없는 대세다. 그러나 남아 있는 '동네'는 보존해서 '왜 지금 우리가 공동체를 다시 논해야 하는지' 그 증거로 남겨야 한다. 우리 후손에게 회색으로 가득한 아파트군락지만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다음 주에는 중학교 시절을 보낸 동네를, 그다음에는 고등학교, 그다음은 청년시절을 보냈던 동네를 찾아가 볼 생각이다. 사라지기 전에 눈도장이라도 찍어 둘 생각이다.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꼭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