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제5유엔사무국' 유치 조례를 만들어 추진하던 고양시가 최근 슬그머니 '국제평화기구' 유치로 방향을 틀어 논란이 일고 있다.

16일 시에 따르면 시와 고양시의회는 지난해 10월 일부 시의원이 발의한 '고양시 제5유엔사무국 유치활동 지원협의회 설치·운영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TF팀을 구성했다. 유엔사무국을 유치해 접경지인 고양시를 평화와 인권 도시로 부각, 국제도시로 발돋움한다는 목적에서였다.

하지만 당시 시 안팎에서는 유엔사무국을 언제, 누가, 어디서 확정하는 건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는 데다 유엔에서 사무국 추가 신설을 고려하는지조차 불투명해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시 관계자와 시의원 등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1억여원의 예산을 수립, 스위스 제네바와 오스트리아 빈 등지를 돌아다니며 유치활동을 벌였다. 이 기간 시가 내놓은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이후 시는 지난달 중순 난데없이 최성 시장이 유엔본부에 '국제평화기구 유치 의향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원래 유엔사무국 유치 의향서를 제출하려고 했다가 사무국 유치에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한 데 따른 갑작스러운 조치였다. 그러면서 유치 방향을 바꾼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유엔사무국 유치계획이 이처럼 출발부터 어긋났다는 사실이 증명된 가운데 시는 올해 또 유럽 출장과 세미나 등을 위해 1억여원의 예산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돼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더욱이 시는 이 돈을 국제평화기구 유치활동에 그대로 돌려 사용하겠다고 밝혀 새 계획 또한 엉성하게 추진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맑은고양만들기시민연대 관계자는 "이번 해프닝은 시장 입맛에 맞게 행정처리를 하다 자초한 결과"라고 질타했고, 시의 한 직원은 "유엔사무국 유치에 예산을 세웠다가 아무런 예산변경 절차 없이 다른 곳에 전용한다는 건 회계질서 문란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시의회에서 유엔사무국 조례를 검토했던 A전문위원은 "유엔과의 사전 조율이 없었던 것은 맞지만, 전부터 이어져온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다"며 "실현 가능성은 낮아도 언젠가 한국이 유치할 때를 대비해 미리 어필하는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고양/김재영·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