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쓸모없고 버려진 땅이었던 습지는 생태계의 보고이며 가장 생명력이 높은 곳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등 국제조직의 노력으로 1971년 이란에서 '물새 서식지로서의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인 람사르협약이 채택됐다. 이는 특정 생물종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습지가 생물서식처로서 범세계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을 국제사회에서도 인정한 것이다.
환경부는 1997년 '람사르 협약'에 가입하여 현재까지 21개 습지를 등록했고, 1999년 '습지보전법'을 제정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생태적 가치가 우수한 35개 습지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그 결과 순천만, 제주 동백동산과 같이 지역사회에서도 습지의 가치를 인식하여 자발적으로 보전하고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사례가 많아지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우선적으로 개발대상으로 치부했던 습지의 생태경관적 가치뿐만 아니라 경제·문화적 가치를 지역사회에서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개발압력이 큰 수도권에서 한강하구는 반세기가 넘는 분단의 시간동안 인간의 간섭에서 벗어나 잘 보전된 지역이다. 갯벌과 자연습지는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고 수많은 야생생물의 서식처이자 독특한 식생이 자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특히 우리나라 대하천 중 유일하게 하구둑으로 막혀있지 않아 생태적 가치를 경제적으로 환산하면 ㏊당 연간 4천294만원으로 추정되며, 이는 영산강의 6배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을 만큼 환경가치가 우수한 지역이다.
지난 2006년 고양·파주·김포·강화지역 중 김포대교 하류방향으로 민간인통제선인 철책선 안쪽의 자연습지와 수면부 60.668㎢가 '한강하구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후 한강청은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체계적으로 습지를 보전·이용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습지보전계획 수립과 이행, 지속적인 모니터링, 철새먹이와 쉼터 제공을 위한 생물다양성관리계약제도 운영 등 습지보전 활동 뿐만 아니라, 주민역량강화사업, 습지가치 인식 제고 활동 및 주민해설사 운영, 장항습지 생태경관 탐방시설 설치 등 습지의 현명한 이용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한강하구 습지포럼'으로 지역간 소통을 활성화하고, 현장의견을 반영한 정책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습지관리가 행정기관 주도의 습지보전 중심이었으나, 앞으로는 정부·지자체·지역주민 등 다양한 주체의 참여와 협력으로 사회경제·지역문화·환경보전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지역주도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체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만으로 한계가 있다. 체계적인 보전과 이용을 위해서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지역주민의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한강하구를 둘러싼 개발과 보전 사이에서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습지보전과 지역개발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끊임없는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다. 습지는 후손에게 물려줘야할 자연유산이자 말 못하는 동식물의 보금자리임을 인식하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한강하구'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길 기대한다.
/홍정기 한강유역환경청 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