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영웅의 생애' 창단후 첫 연주
지휘자 정치용, 까다로운 곡
집중력 잃지않고 정확히 소화
단원 100여명 차례대로 세워
'엔딩크레딧'… 관객 박수갈채
인천시립교향악단이 창단 이후 처음 연주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의 교향시 '영웅의 생애'는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 같았다. 한 영웅이 등장해 고뇌하고 전쟁을 치르며 승리를 거두고 은퇴하기까지의 장면들이 연주 내내 영화처럼 펼쳐졌다.
지휘를 마친 정치용 인천시향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는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차례로 일으켜 세우는 것으로 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을 대신했다.
정치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100여명의 인천시향 단원이 배우로 열연한, '러닝타임' 47분 길이의 영화 '영웅의 생애'는 관람객 1천200여명으로부터 박수를 받으며 그렇게 마무리 됐다.
창단 50주년을 맞아 지난 17일 오후 7시 30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인천시향의 정기 연주회 풍경이다.
시향이 연주한 영웅의 생애는 R. 슈트라우스가 30대 중반에 완성한 곡으로 한 영웅의 일대기를 여섯 부문으로 나눠 그린다. 영웅의 등장에서 그를 시기·질투하는 적과 사랑하는 반려자를 만나고 전쟁을 치르고 승리하며 업적을 세우는 과정을 표현한다. R. 슈트라우스가 자신의 생애를 반추하며 이 곡을 썼다는 분석도 일반적이다.
인천시향이 '50주년, 그 이후를 기대하며'라는 타이틀이 걸린 연주회에 이 대작의 연주를 결정한 이유도 작품의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용 예술감독은 "우여곡절이 많았던 시향의 지난 50년을 회상하는 의미, 또 앞으로 인천시향이 나아갈 길이 시민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교향악단으로 성장하고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는 기대를 담았다"고 소개한 바 있다.
공연 직전 공연장 로비에서 만난 인천의 클래식 애호가들은 과연 인천시향이 이 까다로운 곡을 소화해 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인천시향의 정 예술감독조차 그런 우려가 전혀 없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 곡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상당히 많아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들리도록 연주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곡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연 내내 집중력을 잃지 않았던 인천시향은 그런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인천 시민들 앞에 당당히 증명해냈다.
영웅의 생애 연주에 앞서 1부 마지막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첼로 수석 마르틴 뢰어와의 협연도 인천시민에게는 큰 선물이 됐다.
객석에서 만난 한 음악애호가는 "그의 정확하고 신들린 '운지'가 놀라웠다"며 "소매로 땀을 닦아가며 연주에 몰두한 그의 집중력과 인천시향의 연주도 감동적이었다"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이번 공연에서 시향은 1966년 창단 공연에서 연주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을 선보였고, 이제껏 시향이 한 번도 연주하지 않은 영웅의 생애로 마무리하며 앞으로 시향이 나아갈 길을 암시했다. R. 슈트라우스와 함께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쌍벽을 이루는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곡을 선보이는 등 대곡을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
정 예술감독은 이번 공연을 마치고 "인천 시민이 시향의 질적 성장을 독려하며 시향을 만들어가는 영웅이 되어 줬으면 한다"며 "관심과 사랑으로 지켜봐 달라"고 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