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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1905년 7월 29일, 미국의 26대 대통령인 테어도어 루스벨트의 지시를 받은 미국 육군장관 태프트(Taft,W.)는 동경으로 가서 일본 수상 가쓰라(桂太郞)와 비밀리에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하고, 일본은 조선을 지배한다는 비밀 협정을 맺었다. 남하하는 러시아를 막기 위하여 조선을 일본에 주어 성장시키자는 것이 미국의 논리였다. 당시 주한미국공사 알렌은 일본의 야욕이 커지고 있어 향후 일본이 반드시 미국과 대결을 할 것이니 일본의 조선 지배를 용인해서는 안된다고 강변하였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호감과 조선에 대한 경멸로 알렌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비밀리에 맺은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은 미국의 은밀한 지원하에 조선을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나 일본은 알렌의 주장대로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하며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미국과 일본의 동맹은 서로의 국익 때문에 깨졌고, 미국은 일본을 공격하기 위하여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리틀보이라 부르는 원자폭탄을 투하하였다. 이 결과로 7만8천명이 사망하고 1만명이 실종 되었으며, 3만7천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로부터 41년이 지난 1996년 12월에 히로시마의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이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세계 평화를 위하여 다시는 핵무기가 사용 되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주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의 세계유산 지정이 그 의도와 달리 일본을 피해자로 둔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이상한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일이 최근에 발생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26일에 있을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방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위령탑에서 1945년에 희생된 일본인들을 위하여 추모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이 중국의 성장을 막기 위하여 일본과 깊은 교류를 맺으며 일본의 군사력을 확장하게 하고 있는 처지이니 오바마의 일본 방문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가 더욱더 일본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것을 인식시켜줄 수 있는 행동이 될 수 있다.

당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 죽은 재일 조선인 피폭자는 그 수가 무려 7만~10만 명으로 일본인 피폭자의 10분의 1이 넘는다. 이들은 엄청난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일본으로부터 사과는 물론이고 단 1원의 보상금도 받은 적이 없다. 이러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무 죄도 없이 죽어간 조선인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의 피폭 피해자들에 대해 추모하는 것은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서 냉대받고 고생하다 죽음의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조선인들에 대해 추모하지 않는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추모는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미국이 대한민국과 우방이라고 자처하면서 역으로 우리 대한민국을 우습게 보고, 과거 적이었던 일본에 대해 신우방으로 일본의 비위만을 맞추려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역사의 반성도 아시아의 평화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은 이를 정확히 알아야 하고 이들에 대한 보상을 반드시 해야 한다.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