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철수도권기상청장2
남재철 기상청 차장
6월은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현충일과 6·25가 있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세계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기원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며 물리학자, 기상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날씨가 인류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말했다. 전쟁에서 기상이나 날씨 변화를 활용해 인간의 역사에 영향을 준 전쟁 이야기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기원전 492년 페르시아는 아테네를 정복하기 위해 대함대를 이끌고 진군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태풍으로 대함대가 바다에서 침몰해 그리스에 참패를 당했다. 당시 페르시아가 태풍을 예상하고 전쟁을 미루거나 빨리 시작해 전쟁의 승패가 바뀌었다면, 화려한 그리스 로마 시대는 세계사에서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 삼국시대인 208년 조조는 30만 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형주 장강의 적벽에서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과 전투를 했다. 조조의 군대는 북방에서 내려와 군사들이 습한 기후에 뱃멀미를 하자 해결책으로 수군의 크고 작은 배들을 십여 척씩 쇠사슬로 묶은 다음 배 위에 넓은 판자를 깔아놓았다. 이때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은 강한 동남풍을 예상해 동짓날 밤 이십여 척의 배에 볏짚과 기름 천을 싣고 북쪽에 정박한 조조의 대군을 향해 전진, 화공(火攻)으로 대승을 거뒀다.

"승리는 가장 끈기 있는 자에게 돌아간다"는 명언을 남긴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1805년 유럽 제패의 꿈을 이루기 위해 60만 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러시아 원정에 나섰다. 폭염 속에서도 러시아로 진군해 모스크바를 점령했으나 10월이 되자 모스크바에 혹한이 일찍 찾아와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은 더는 버틸 수가 없어 철군을 결정했다. 추운 겨울 준비를 하지 못한 프랑스군은 산발적인 러시아군의 공격과 추운 날씨 그리고 식량문제로 11월 중순이 되자 60만 명의 대군은 10만4천 명으로 줄었다. 12월이 되자 영하 40도의 추위에 대부분의 프랑스 병사들은 동상이 걸려 사망하거나 탈영해 단 3만여 명만이 프랑스로 돌아온 참혹한 패배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었던 노르망디상륙작전은 영국 공군 기상대장인 스태그 대령의 기상 예보를 근거로 아이젠하워 연합군 총사령관이 작전 강행을 결정했다. 노르망디상륙작전과 유사한 조건에서 시행된 인천상륙작전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잦은 폭풍과 안개 등 악천후 기간에 이뤄졌다. 미군 기상대의 정확한 기상예측과 분석을 통해 9월 15일을 상륙 적기로 잡았다. 그러나 태풍 제인과 케이지가 발생해 작전이 심각한 상황에서 기상장교는 태풍이 12~13일 대한해협으로 지나가므로 미 함대가 미리 출항하면 비교적 안전한 태풍의 왼쪽인 가항반원으로 항해가 가능할 것으로 조언했다. 이에 맥아더 장군의 현명한 판단으로 미 함대는 일본 고베 기지를 일찍 출항하고 예정대로 인천에 도착해 9월 15일 새벽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실행해 6·25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미 해군기상대의 예보는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육·해·공군에 기상지원 조직이 있으며 특히, 공군 기상단은 전국 군 공항에서 전투기의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한 정확한 기상예보를 하고 있다. 현대에서는 생화학전 같은 전쟁이 예상되므로 기상정보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통용되고 있다. "날씨는 인류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여전히!"

/남재철 기상청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