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중학교 과정 중 한 학기 동안 시험을 치르지 않고 체험활동을 하면서 진로를 찾게 한다며 올해부터 자유학기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중학교 과정 중에 진로를 결정하고 찾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자유학기제가 외려 다른 형태의 사교육의 기승을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진로에 대한 고민은 꼭 필요하다. 필자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고민을 심도있게 할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를 위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갭 이어(Gap Years)' 도입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1960년 영국을 시작으로 미국, 캐나다,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등이 갭 이어를 시행하고 있다. 갭 이어는 대학 진학을 앞둔 고교 졸업생이 진학 대신 1년간 여행이나 봉사활동, 인턴 등의 다양한 체험을 쌓는 기간을 일컫는다. 입학은 보장하면서 통상 1년의 등록 유예시간을 주는 것으로 휴학제도와는 차이가 있다. 일본에 이어 중국도 갭 이어를 도입하려 하는데 국내 대학 중 갭 이어 제도를 도입한 곳은 어느 지역에도 없다. 갭 이어를 보낸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높았다는 해외 교육당국 발표는 제도의 효과를 방증하고 있다.
최근 버락 오마바 미국 대통령의 큰딸 말리아 오바마가 하버드에 입학, 갭 이어를 하며 입학을 1년 미뤘다는 소식은 외신을 통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앞서 영국 윌리엄 왕세손이나 해리왕자, 영화배우인 에마왓슨 등은 갭 이어를 통해 봉사활동, 환경보호 등 다양한 경험을 가진 바 있다. 이를 통해 가치관 정립과 삶의 방향 제시 등 자아를 찾는 시간을 갖으며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뚜렷이 발견하고 학교에 다시 돌아갔을 때 더 선명한 미래를 내다보며 임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청춘들은 어떤가? 대다수 청춘들은 대학입학을 위해 달리고 다시 취직을 위해 달린다. 스스로 삶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 돌아볼 여유도 없이 끝모를 앞을 향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달리고 있다. 정녕 내가 원하는 길인지 헷갈려 하며 말이다. 스펙쌓기에 바쁜 우리 청춘들에게 더 큰 가치를 찾도록 하는 '작은 쉼표'인 갭 이어가 주어져야 한다. 대학이 등록시기를 일정 기간 유예해주고 주어진 작은 쉼표의 시간을 통해 한걸음 잠시 물러나 성숙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재능을 발견하고, 원하는 진로를 찾아 한 걸음씩 내디딜 수 있다면 어떨까. 폭넓은 선택의 자유가 대학 입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내일을 희망해본다. 갭 이어를 도입하는 대학이 하루빨리 나오길 기원한다.
/김정훈 경기평택항만공사 전략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