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겐 인기가 없지만, 미국인들이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에 대해 갖는 자부심은 매우 크다. 세계 역사를 바꿔 놓을 결정적인 순간에서, 대통령으로서 고뇌에 찬 결단을 내렸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도 전가하지 않았던 보기 드문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재임중 그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일본 원자탄 투하, 이스라엘 국가 공인, 한국전 참전, 맥아더 경질 등과 같은 역사를 바꿀 시대의 굵직한 상황에 수없이 직면했다. 그때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책임을 남에게 전가할 수 없다. 세상 어느 누구도 대통령을 대신하여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것은 대통령의 일이다." 실제 트루먼의 좌우명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였다.
한 나라의 운명은 지도자의 영도력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특히 위기 앞에서 지도자가 내리는 결단은 국가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때가 많다. 트루먼처럼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비교적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영국과의 독립투쟁, 노예제도를 둘러싼 남북전쟁, 1· 2차 세계 대전 등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대통령의 결단은 오늘날 미국을 초일류 강대국으로 만드는데 공헌했다.
요즘 우리 주변에 이런 어려운 대통령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한 후 그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감으로 반총장이 타의 추종을 불허 하는 결과가 나오자 그냥 있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가 돌아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자천타천 출마가 거론되는 정치인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언론은 '대권 잠룡'이라며 스스럼없이 이들을 부추긴다. 오죽하면 '소는 누가 키워?'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돈 안든다고 그냥 슬쩍 이름 한번 올려보겠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특히 자치단체장일 경우, 여론 호도(糊塗)가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결국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 또는 도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트루먼은 이런 말도 남겼다. '대통령은 호랑이 등에 탄 사람과 같다. 계속 타고 가거나, 떨어져서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거나 둘 중 하나다'. 문제는 아무리 둘러봐도 대통령병에 걸린 환자만 보일 뿐, 호랑이 등에 올라 탈 용기 있는 대통령감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딴 생각 말고 집에 있는 소나 잘 키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