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지방세 8:2' 극심한 불균형부터 바로 잡아야
공동 번영·발전위해 '지방분권 실현' 상생·협력 시급

먼저,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제가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책임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자치분권실현을 위한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장님들의 관심과 성원 덕분이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과중한 복지비 부담 완화를 위한 공동 호소문을 채택해 지방의 어려운 살림을 부각시켰고, 경주선언문을 통해 '지방을 바꾸어 나라를 바꾸자'는 결의를 다졌으며 특별·광역시 자치구·군제 폐지 등 지방자치를 후퇴시키는 지방자치 발전 종합계획에 적극 대응하여 국민적인 관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지난 20여년간 쌓아온 자치분권의 역사가 단체장님들의 관심과 참여 덕분에 하나둘 열매를 맺고 있다는 사실에 저는 기쁜 마음으로 사무총장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정신입니다. 우리는 지방자치의 문을 열기 위한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생명을 건 단식투쟁과 고(故) 김영삼 대통령께서 내린 '풀뿌리 지방자치 전면 부활'의 결단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우리는 지난 20년동안 지방자치를 꽃피우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지금 그러나 지난 20년의 공든탑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정부의 지방재정개편안 추진 때문입니다. 정부의 주장처럼 '좀 살만한 지역이 어려운 지자체를 돕는다'는 건 인지상정의 마음으로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 당장 인건비를 해결하지 못하는 절박한 자치단체의 입장에서는 '자치분권이 밥 먹여주냐'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부의 지방재정개편안은 가뭄속의 단비일지도 모릅니다.
국가가 논밭을 열심히 일궈 얻은 수확량의 절반을 농부에게서 일방적으로 빼앗아 다른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자고 하면 쉽게 동의할 수 있을까요? 또한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농부의 동의나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면 어떠할까요? 더욱이 지방자치발전을 위해 앞장서야 할 행자부가 지자체간 갈등을 부추기고 그것도 모자라 일부 지자체에 찬성서명까지 요구하고, 피해 지자체에 책임을 덮어씌우는 '피해자 코스프레'에 힘쓰는 모습은 경천동지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원시, 고양시, 성남시, 용인시, 화성시, 과천시 등 6개의 불교부단체의 세입을 나누어 갖는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지요? 아닙니다. 정부의 이번 개편안으로는 지자체의 예산갈증이 완벽하게 풀리지 않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가뭄이 든 논에 소방차 물대기식의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수도권의 도시나 농어촌의 군이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없는 살림'인데, 그 안에서 쪼개 쓰라는 건 정부의 정책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지자체간 재정격차 해소와 지방재정 건전화는 지방정부의 곳간을 강압적으로 빼앗을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곳간에 쌓여있는 곡식을 지자체에 나눠주면 쉽게 끝나는 문제입니다. 8대 2로 극심한 편차를 보이고 있는 국세-지방세 불균형을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하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전국의 기초자치단체장님들께서는 '지방을 바꾸어 나라를 바꾸자'는 대의 앞에 지역특성에 맞는 발전을 모색하고 있고, 대한민국의 지방에서 세계의 지방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정부의 지방재정개편안으로 인해 지자체가 서로를 질시하면서 갈등해서는 안됩니다. 지방과 지방,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화합보다는 우리 스스로 편가르기에 나선다면 갈등의 골만 깊어져 단체장의 한사람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간의 공동번영과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 함께 연대해야 합니다. 복지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의 목소리와 자치분권을 위한 경주선언을 이끌어냈듯이 우리는 상생과 협력의 DNA를 갖고 있습니다. 지방자치와 분권을 위해 함께 협력했고, 그 결과 발전의 발자국을 남겨왔습니다. 정부의 지방재정개편 추진과정을 지켜보면서 지금이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위기이자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방자치의 근간이 훼손될 수 있다는 걱정과 동시에 연대와 협력을 통해 지자체간 재정격차를 해소할 방안 모색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를 지켜야 합니다. 공감과 협력, 그리고 연대만이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습니다. 지방자치가 밥 먹여주는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단체장님들께서 희망의 방파제가 되어주십시오, 지방자치를 지켜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염태영 수원시장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