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병난 시계처럼 휘둥그레지며 멈칫 섰다.
박용철(1904~1938)

물론 그 시간은 지금-여기라는 공간의 장소에서 만나는바, '시공간'에서 벌어지고 재생된다. 개별적인 시간을 가지고 사는 우리에게 주요하게 남아있는 시간의 의미는 하나의 사건이며, 이 사건은 기억으로 저장된 것이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뼈아픈 이별을 해본 당신도 헤어진 사랑을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만났을 때 순간적으로 초점이 "휘둥그레지며 멈칫"했다. 그 후 정지된 시계처럼 얼어붙은 당신의 사랑을 캐내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문득 문득 무의식의 저편에서 찾아온다. 이른바 운명처럼 마주치게 되는 '해후'라는 '기억의 장치'는 고장 난 시간과 같이 불연속적인 '이별의 공식'으로 돌아오고 돌아가고 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