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이용자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경고문'이다. 주로 버스 기사 운전석 뒤편이나 버스 하차용 출입구 등 승객이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부착돼 있다. 버스회사나 버스공제조합이 붙여놓은 것들이다. 이들은 "내리실 승객은 벨을 누르시고 앉아계시다가 차가 완전히 멈춘 후에 내리세요"라고 안내하기도 한다. 버스가 운행 중일 때, 목적지 도착을 앞두고 하차하기 위해 움직이다가 다치면 승객이 책임져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볼 때마다 이상했다. 버스가 정류소 앞에 정차한 다음에 좌석에서 일어나 하차하는 승객도, 그런 승객을 위해 기다려주는 기사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인천버스터미널에서 학익동 방면의 버스에서 겪은 일이다. 한 승객이 목적지에서 내리려고 하는 데 기사가 문을 닫고 출발했다. '내려달라'는 여성 승객의 요구에 기사는 '왜 미리 움직이지 않았냐'는 식으로 힐난했다. 이런 게 버스를 타는 시민의 일상인데, 이동 중에는 움직이지 말라고?
버스회사와 공제조합의 말은 맞는 것일까. 판례를 찾아봤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7단독의 판결이 있었다. 80대 노인이 시내버스에서 하차하려고 움직이다가 급정거로 넘어져 다친 사건인데, 재판부는 공제사업자의 배상 책임을 70%까지 인정했다. 승객이 손잡이를 잡는 등 '주의 의무'를 게을리 한 것보다, 승객이 버스에서 안전하게 내릴 수 있게 해야 하는 운전 기사(버스 업체)의 과실을 더 크게 본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의 2009년 '시내버스 차내 안전사고 실태 조사' 결과 버스 차내 사고 피해자 상당 비율은 고령자, 여성이었고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무거운 짐 보따리를 든 노인은 버스에서 늘 위태롭다. 차가 완전히 멈춘 후 하차 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빡빡한 배차 간격 등 버스 기사의 열악한 근무 조건을 보면 당장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인천시는 다음 달 30일자로 버스 노선을 전면 개편한다. 이에 맞춰 승객을 협박하는 '버스 정차 후 하차' 문구를 떼 버리기를 바란다.
/김명래 인천본사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