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겠나, 갓난아기를 얼어죽일 수는 없는 일이니….”

아들이 교통사고를 내 구속되고 며느리가 집을 나간 뒤 생후 6개월 된 손주를 키우며 살고 있는 김한기(67·가명·수원시 세류동) 할아버지와 최향순(63·가명) 할머니.

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자(이하·수급자)로 생계급여 60여만원을 받아 힘겹게 살고 있는 이들 노부부는 지난달 반지하 셋방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보증금 500만원짜리 방에서 230만원짜리 반지하 셋방으로 이사를 해야 했던 이유는 지난 7월께 연체료를 내지못해 도시가스가 끊긴 뒤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이용, 취사와 온수를 해결해왔지만 겨울이 다가오면서 더이상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차례에 걸쳐 가스공급업체인 삼천리측에 사정도 해봤지만 묵묵부답. 결국 노부부와 갓난아기는 겨울을 나기 위해 더 좁고 허름한 방으로 옮겨가야 했다.
 
정부가 지난 8월과 11월 2차례에 걸쳐 수급자들을 대상으로 단전·단수·도시가스 공급중단 등을 오는 2005년 3월까지 유예해 줄 것을 지자체와 해당업체에 요청했는데도 유독 도시가스업체만 매몰차게 묵살하고 있다.
 
수원시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정부의 '도시가스공급중단 유예요청'을 통보받고 지난 9월과 11월 2차례에 걸쳐 경기남부지역 13개 시·군에 가스공급을 독점하고 있는 (주)삼천리 측에 공문과 수급자 명단을 보내 '공급중단유예 협조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천리 측은 '그(공급중단 유예)로 인한 손해를 보전할 방법이 없는 한 곤란하다'며 수차례 거절 의사를 통보했을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19일 삼천리경기남부지역본부와 도에 따르면 11월말 현재 도내 가스공급중단세대는 시·군 별로 적게는 수백세대에서 많게는 수천세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1천200세대중 678세대가 수급대상자인 수원시 우만동 영구임대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3개월만 체납하면 무조건 공급을 중단하고 있다”며 “특히 독거노인들의 경우 깜박 잊고 3개월전 요금 1개월분을 연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도 업체는 이같은 사정에 전혀 아랑곳없어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삼천리 관계자는 “단전·단수를 유예할 수 있는 건 한전이나 상수도사업소 등은 공기업으로 정부가 수익을 보전해 주기 때문”이라며 “사기업인 가스공급업체는 수익성을 따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가스공사는 기초생활수급자들의 민원이 쇄도하자 지난 17일 뒤늦게 도시가스공급업체들과 협정을 맺고 지난 10월부터 내년 3월까지 체납된 수급자들의 가스요금 납부를 6개월간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공급이 중단된 많은 저소득층 세대의 경우 10월 이전에 연체한 경우가 많아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