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한국화장실협회 사무처장
이은주 한국화장실협회 사무처장
우리나라는 88서울올림픽과 2002한일월드컵 등 굵직한 국제행사가 개최되면서 화장실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2004년 세계 최초로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까지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아름다운 화장실, 친환경 화장실, 선진 화장실을 내세우며 우리의 공중화장실은 각종 서비스 시설·용품을 두루 갖춘 복합 문화공간으로 바뀌었으며, 일부 개발도상국에서는 우리의 화장실 문화를 벤치마킹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는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 등에서 설치·관리하는 화장실에 국한되어 있으며, 관련 법에 적용받지 않는 화장실의 설치·관리는 제도권 밖에서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셜메트릭스 빅데이터 분석결과, 5월 한 달간 화장실이라는 단어와 관련한 감성키워드 순위는 기다리다, 범죄, 여성혐오 등의 순으로 나타났으며 기타 연관 키워드로는 살인, 남성, 흉기 등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쳐지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얼마 전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다.

현행법에서는 법 제정 이전의 시설과 연면적 3천㎡ 미만의 건축물(1·2종 근린생활시설은 연면적 2천㎡미만)에 설치되는 화장실에 대해서는 남녀분리 설치의무가 없다. 그러다보니 공용화장실과 같이 남녀가 분리되지 않은 것을 기본으로 잠금장치 등 시설 파손, 화장지·비누 등 소모용품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고 유지·관리가 미흡하여 악취는 물론 세균이 득실거리는 화장실이 너무나도 많이 있다.

다행히 최근 발생한 사건을 계기로 남녀화장실 분리 등 설치기준 강화를 비롯하여 화장실법 적용 대상 확대, 공용화장실 개선 시 인센티브 제공, CCTV나 비상벨 등과 같은 보안시스템 설치, 화장실 관리인의 상시 투입, 국비지원을 통한 화장실 개보수 실시 등 다양한 개선방안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법의 적용을 받는 공중화장실 등은 과연 제대로 설치·관리되고 있을까?

2015년 행정자치부와 한국화장실협회가 공동으로 실시한 전국 공중화장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조사대상 : 전국의 독립형 공중화장실 120개소), 남녀화장실 변기 수 비율이 1 : 0.88로 여성의 변기수가 남성에 비해 적은 것으로 조사되었다(법 제7조 위반).

장애인화장실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 21%나 있었으며, 설치된 곳 중에서 남녀공용으로 설치된 곳이 25%에 달했다(장애인·노인·임산부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어린이용 대변기, 세면대 설치율은 각각 28%와 16%로 나타났다(법 제7조의2 위반). 법적 의무는 아니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장애인화장실과 여성화장실 내 비상벨 설치율은 단 12%와 8%에 불과하였다.

화장실법 제4조와 제12조에서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의 편익증진 및 위생수준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공중이 이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 등의 설치, 지정 및 관리에 필요한 시책을 마련해야하며 연1회의 정기점검과 필요시 수시점검을 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대책을 발표하고 잠잠해지면 또 흐지부지 되는 급조된 정책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실질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더욱 고민해야 할 것이다.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화장실이 범죄구역이 아닌 안전보호구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부와 설치·관리주체, 그리고 이용자가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보장되는 선진화장실문화 정착을 위하여….

/이은주 한국화장실협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