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범 과장
김충범 경기도 농업정책과장
들녘의 모내기가 마무리 되어 가고 있다. 신록의 푸르름에 더해 들판의 색깔이 녹색으로 채워지면서 절로 배부름이 느껴진다. 한세대 전에는 보릿고개가 있었다.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 종자를 개발하고 저수지와 비료 공장을 만들었다. 그렇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먹는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고 이제는 수출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중진국을 넘어 이제 선진국 문턱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 선진국의 정의를 명쾌하게 내리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 나라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군사력, 산업을 이끌어 가는 우수한 과학기술 그리고 식량의 자급력이다. 모두 스스로 나라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기본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선진국의 대명사 미국을 보자. 미국에는 특이하게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들이 많다. 본국인 아일랜드의 인구는 500만 명도 안되는데 비해 미국에는 3300만 명이 살면서 케네디와 레이건 등 대통령과 수많은 주지사, 시장 등 정치인을 배출했다. 당시 아일랜드에는 몇 년에 걸쳐 주식인 감자가 흉년이었는데 배고픔을 못 이겨 신대륙으로 떠난 것이 오늘날 미국에서 아일랜드 파워의 배경을 이루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1차, 2차 세계 대전을 겪은 유럽 국가들은 전쟁 중 많은 배고픔의 기억이 있고 농업 강국인 네덜란드도 나라꽃인 튤립 뿌리를 한때 식량으로 먹었을 정도로 식량 위기를 겪었기에 선진국들은 배고픔과 농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다. 몇 년 전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을 비롯해서 중동과 아프리카의 독재 국가들이 국민 봉기로 무너지는 배경에는 계속되는 가뭄과 농사 실패에 따른 배고픔과 물가 폭등이 자리하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식량인 쌀만큼은 거의 100% 자급을 하고 있어 식량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은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오히려 쌀을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고 쌀 소비의 감소와 재고 증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 역사의 대 반전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쌀농사를 포함해서 농업 현장 곳곳이 기계화, 자동화되고 ICT와 스마트폰이 연결되면서 농사짓기도 한층 편리해지고 생산성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기계가 하지 못하는 부분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뙤약볕 아래 허리를 구부리고 발 내딛기도 힘든 논 한가운데서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 뜬 모(floating seedling) 작업이다. 너무 힘들고 허리도 아프고 쌀 가격도 높지 않은데 고령화로 어려운 농촌에서 요즘에는 잘 하지 않는 것이 뜬 모 작업이다. 논바닥이 골고루 잘 펼쳐져 있으면 이앙기가 시원스럽게 착착 소리를 내면서 모를 정확하게 심을 텐데 실제 논바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런 곳은 그냥 포기하든지, 아니면 사람이 들어가서 그 빈자리를 심어줘야 하는데 심지 않고 포기하는 양을 전국적으로 합산하면 엄청난 양이 될 것이다. 논 한가운데에 홀로 허리를 구부리고 뜬 모 작업을 하는 농민들을 보면서 무던히도 잘 참아내고 잘 버텨온 우리의 저력을 느낀다. 다시 한번 뜬모 작업을 하신 분들에게 격려를 보내자. 40년 전 보릿고개가 사라진 배경에는 묵묵히 뜬 모 작업을 해온 농민들의 수고가 있었다는 생각이 다. 새삼 그 버거운 고통 속에서도 묵묵히 한발 한발 내딛는 농민의 손길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김충범 경기도 농업정책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