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1997년 '일시적' 금융위기 때, 알짜배기 기업과 부동산들이 해외의 '먹튀' 투기꾼들에게 사냥감이 됐던 씁쓸한 기억을 품고 있다. 구조조정이 잘되어 경기가 회복되고 보니, 엄청난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어 남 좋은 일이 되고 말았다. 이번 세계경제위기 속의 구조조정도 해운업은 작은 시작일 뿐, 조선, 건설, 철강 등 기존의 주력산업치고 21세기에 최적화되도록 살갗이 벗겨지는 환골탈태를 앞두지 않은 부문이 없을 정도다.
물론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등 대기업들이 혹시라도 시대착오적인 방만한 족벌 경영, 비합리적 조직문화, 중대한 경영판단 실책이나 불법·탈법 등으로 현 사태를 야기한 측면이 있다면, 그 책임은 엄중히 물어야 한다. 하지만 정의구현 일변도의 속 시원한 극약 처방으로 국적선사가 고사하여 멸종되기라도 한다면 그건 더 큰 위기를 자초하는 셈이다. 조만간 세계 경제가 회복됐을 때, 우리 무역업계는 지금껏 집구석 호랑이로 국내 물류업계만 닦달해온 처지에, 글로벌 물류 공룡들에게 휘둘리는 영원한 '글로벌 을'의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 테니 말이다. 입술이 망하면 치아가 시린 법이다. 그러니 미우나 고우나 내 자식을 키워내야 하고, 매서운 회초리로 다스리더라도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반듯한 세계적 일꾼으로 성장시켜 놓아야 한다고 본다.
이런 생각이 개인적 소회에 불과하다거나 무역업계의 시각치고는 새삼스럽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2004년 화물연대파업으로 항만과 컨테이너야드가 텅텅 비고 해외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곤욕을 치른 바 있었다. 그 당시 무역협회는, 물류비 절감으로 국제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물류업계를 압박만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무역업계에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역과 물류가 '상생 동반자'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이에 따라 무역협회는, 2005년에 출범한 인하대 물류대학원과의 공동 프로그램으로 GLMP (물류최고경영자과정)를 설립했고, 11년째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1천여명의 원우들을 배출하고 물류와 무역업계 간의 상호 이해를 위한 소통 네트워킹, 최신 지식정보의 공유, 물류업계의 조직문화 향상 등에 힘쓰고 있다. 아울러 6월 현재 취업준비생들을 모집 중인 '전자무역물류 마스터 과정'을 지난해 출범시켜, 종이 없는 무역실무와 물류 현장지식, 그리고 GLMP 원우기업 등에 취업하여 물류업계의 글로벌화를 책임질 미래 인재에게 필수인 외국어능력까지 겸비토록 하는, 취업과정도 운영 중이다.
이번의 해운산업 구조조정은 물류산업의 동반자인 우리 무역업계의 중장기적 이익 측면에서도 지극히 중요하다. 무역업계가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세계교역량(2015 무협 통계)이 연간 약 33조 달러 언저리에서 지지부진하고 우리 무역규모가 약 1조 달러이니, 세계교역에서 우리 무역이 이바지하는 비중은 약 3% 정도다. 그런데 글로벌 물류시장 규모가 3.3조 달러인데 반해 우리 물류산업의 매출액은 93조원(2015 국토부통계)이니 그 비중이 2.5% 정도로 뒤처졌고 그나마 국내 매출 위주일 뿐 글로벌 물류시장에서의 매출액은 권위 있는 통계조차 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글로벌 공룡들과 경합할 정도로 덩치를 키워가던 국적 해운사들이 이번 구조조정에서 '원기'를 훼손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물류산업은 병참 등 국가안보와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미국도 특별법 등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연안 해운업을 보호하고 있지 않은가.
특히 경기 북부지역은 대륙 물류의 교두보이자 유통과 무역의 중심지이며, 6천여 무역협회 회원사들이 21세기형 세계 산업구조에 최적화하기 위한 자기 혁신을 거듭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무역과 물류업을 병행하는 등 서비스 수출에도 진출하는가 하면, 오프라인과 온라인, 나아가 모바일 무역을 병행하는 창의적인 회원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무역협회가 지난 3월 말 경기 북부지역본부를 킨텍스에 설치한 것이다. 전국적으로도 그렇지만 특히 경기 북부에서의 '무역과 물류와 IT의 융합'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점에서,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해운업 구조조정이 큰 틀에서 보면 물류산업의 자기 혁신이라는 점에서, 부디 전화위복의 결실을 보게 되기를 기원한다.
/박진성 한국무역협회 경기북부지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