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연극계나 문단에서
함세덕을 기리고 싶은것은 당연
그의 뛰어난 성과와 과실조차
안타깝게 이해하는 날 올것
그가 남긴 작품 깊이있게 탐구
사색하며 실천하는게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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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지난 7일 인천 문학시어터에서는 인천연극협회 주관으로 '함세덕과 인천연극의 미래'라는 주제로 작은 포럼이 열렸다. 2015년이 탄생 100주년이었으나 변변한 기념행사도 준비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공유된 자리였다. 함세덕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인천이 낳은 한국근대연극사 최고의 작가이다. 그러나 친일과 월북으로 그의 문학이 제대로 조명되고 해석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렸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친일부역행위가 명백한 인물을 기념하는 사업에 공공재원을 지원받을 수는 없다. 당연한 일이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불공평하게 시행되고 있는 현실이나, 과실 때문에 공적으로 기릴 수 없는 불합리한 지점을 들어 재고를 요구하기도 하며 심지어 당시에는 누구나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더 이상 이를 거론하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친일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이는 아예 거론되지 않거나 누구나 다 그랬다는 합리화로는 절대 극복될 수 없다. 친일의 문제는 현재에도 청산되지 않았고 이는 우리 사회 전 영역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거론할 수 없으니 간단하게 문학의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현재의 판단으로 친일문학은 일종의 자기기만의 결과이다. 친일작품을 심층 분석하면 대부분 친일부역을 강요받는 자아와 이를 용인하는 자아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식민지 조선의 대부분 작가는 식민지 조선인이 평등하게 일본제국의 신민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친일작품의 1차 주제는 일본제국을 찬양하고 전쟁참여를 독려하며 희생과 헌신을 예찬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믿지 못하는 것을 외칠수록 표현은 과격해지고 목소리는 높아졌으며 종국에는 한낱 식민지의 소모품인 주제에 제국의 지배자처럼 사고하고 산 채로 먹히면서도 그것이 영광이라고 호도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현재도 남아있는 친일문제의 일원인 것은 이 같은 자기기만의 형식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당연하게 남아 비판되고 반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의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일이 한국사회에서 이토록 흔하게 된 시초가 바로 여기에 있고,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솔직하게 시비를 가리지 않고 앵무새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탄생한 시초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모두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는 평범한 인간으로 잘못을 반성하고 고쳐 다시 행하지 않으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배웠다. 그러나 '자기기만'은 이 같은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봉쇄한다. '자기기만'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고 새로운 악행과 고통의 발신처가 되게 한다. 경과가 어떠했든 그 결과는 책임져야만 한다. 원래는 피해자요, 강요되었다는 변명이 책임일 수는 없는 것이다. 친일문학을 연구하고 친일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고통스러운 '자기기만'을 넘어서기 위한 일,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원을 받아 기념사업을 하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우리에게 '친일문제'가 무엇인가, 현재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우리 자신이 어떻게 그 후예가 되었는가를 묻는 것이다.

함세덕을 오랫동안 공부해왔고 또 공부 중인 연구자로서 함세덕의 장점과 공적으로 그를 높이 기리고 싶은 욕심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한편으로 함세덕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그의 뛰어난 작품을 제대로 조명하고 이해하는 것이며 그와 완전히 같은 비중으로 그의 과오와 오판의 맥락, 그리고 그 결과를 깊이 있게 성찰하는 것이라 믿는다.

인천연극계나 문단에서 함세덕을 기억하고 기리고 싶은 소망은 당연하다. 이는 비단 인천의 소망에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모든 문제를 극복하고 함세덕의 뛰어난 성과는 물론이요 그의 과실조차 안타깝게 이해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준비하는 것은 성급하게 함세덕에게 숭배의 의장을 입히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얄팍한 2차 콘텐츠를 서둘러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것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사색하며 이를 실천하는 데 있다.

/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