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 동북 변방 옛 요동지방 사계
흑과 백으로 표현 '깊은 감동'
작가로서 예민해서 일까
경계없는 자연의 질서아래
인간적 가치 비로소 드러난다는
문학만이 할 수있는 위대한 발견

일단 놀랐던 점은 대륙의 '스케일'이었다. 중국에서는 웬만한 지명도가 있는 작가라면 20만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책이 팔린다고 했다. 그리고 대부분이 작가협회에 소속되어서 나라에서 일종의 '월급'을 제공받는다고 했다. 문학 시장이 점점 좁아져서 1만부 정도만 팔려도 베스트 셀러로 불리는 우리와는 상황이 확실히 달랐다. 시인들이 각 성(城)을 돌며 낭독회를 열다보면 일 년이 걸린다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몇 번의 여행으로 경험한 중국을 떠올리면서 엄청난 속도로 도시화된 베이징과 칭다오, 그와 전혀 다르게 옛날의 번영을 증언하며 폐허로 남아 있던 둔황 지역을 회상했고, 일년에 걸려 그곳을 가로지르는 시인의 여정에 대해 상상했다. 그 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문학에 반응하고 이야기할지를, 그렇게 해서 시인은 또 얼마나 달라진 세계를 안고 귀환할지를.
함께 토론한 중국의 소설가는 한국의 대중문화에 비해 한국 문학이 제대로 소개가 안 되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한국 소설들이 개인의 삶에 대한 섬세한 결을 담아내고 현대 도시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그려져 중국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이었다. 나는 중국과 한국이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이 비슷하면서도 결을 조금 달리한다고 느꼈다. 두 나라 모두 개인의 삶을 장악하고 있는 자본의 위협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지만 한국 작가들이 그 대결에서의 패배에서 오는 무기력과 고독, 쓸쓸함에 대해 좀 더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중국 작가들은 한국소설의 주인공들이 왜 그렇게 고독과 고립감을 느끼고 있는가 묻기도 했다.
그것은 한국인들의 식탁은 왜 그리 소박한가, 절약정신 때문인가, 하는 중국 작가의 농담 섞인 질문과 함께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부를 축적해나가고 있는 중국에 대한 어떤 인상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중국의 작가들은 이 세계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흐를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었고 그러한 세계를 이미 경험한 우리로서는 그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음을 예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내년에, 또 다음 해에 우리가 만날수록 그것은 더 아프게 확인될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중국의 작가들이 관심을 보인 한국문학에서의 도시라는 것, 그것에 드리워진 거대한 그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었다. 그것은 너무나 거대해서 대륙의 크기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마지막날 내가 낭독한 글은 중국작가가 기록한 동북지역의 사계에 대한 에세이였다. 그곳은 중국 동북의 변방, 연암이 무릇 크게 한번 울어볼 만한 곳이라고 했던 옛 요동 지방에 관한 글이었다. 작가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사계의 변화를 흑과 백의 단 두 가지 색으로 표현하면서 탄생과 소멸 그리고 자연적인 순환에 대해 기록했는데, 나는 거기서 깊은 감동을 느꼈다. 무릇 문학이란 작가란 그런 세계의 있음에 예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식탁의 크기나 대륙의 넓이가 아니라 경계가 없는 자연의 엄정한 질서 아래 놓을 때 인간적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는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발견에 대해서 말이다.
/김금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