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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1899년(고종 36) 2월 2일 고종은 8도의 관찰사를 새롭게 임명했다. 수시로 관찰사들을 임명하기는 했지만 이번 임명은 모두 새로운 인물들이었다. 이때 경상북도 관찰사로 임명된 사람이 바로 나주 군수 김직현이었다. 김직현은 11년 전 일개 성균관 유생에서 구일제(九日製)라는 특별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에 들어와 승승장구한 인물이었다. 그가 과거에 합격하고 요직에 임명된 것은 국왕과 고위 관리들에게 뇌물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김직현은 나주군수를 하면서 백성들이 낸 세금 8만원을 고을의 아전이었던 김용규로 하여금 서울에 올라가 고위 관리들에게 뇌물로 전달했다. 이 뇌물로 김직현은 경상북도 관찰사에 임명되었고, 일개 아전에 불과했던 김용규 마저도 해남군수가 되었다.

뇌물로 관직을 사고팔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고종시대에 수시로 발생했다. 일본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것에 분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매천 황현이 저술한 역사서 '매천야록'에 보면 고종과 민왕후의 방탕은 극에 달했다. 이들은 원자인 순종이 태어나고 나서 어린 아들을 위해 8도의 명산에 기도한다고 엄청난 재물을 썼다. 거기에 더해 고종과 민왕후는 향락에 물들어 새벽까지 연회를 베풀고 유흥을 즐기느라 엄청난 돈을 썼다. 밤늦게까지 놀다가 오후에 일어나 나랏일을 하는 군주가 어떻게 온전하게 국가를 경영할 수 있었겠는가? 거기에 민왕후의 사치가 더해 국가의 재정은 붕괴되고 있었다. 나라 재정이 붕괴되다보니 국왕과 왕비는 유흥을 위하여 엄청난 뇌물을 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뇌물의 대가로 관직을 주었고, 관직이 수시로 변경되어 국가의 행정이 올바르게 이어질 수 없었다.

김직현은 관찰사가 되자마자 본색을 드러냈다. 김직현은 관찰사를 하며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그가 얼마나 심했으면 고종마저도 김직현의 엄청난 비리에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종은 17개월 뒤 다음과 같은 하교를 내리며 그를 파직시켰다.

"나라에서 관청을 세우고 벼슬자리를 설치한 것은 백성을 양성(養成)하기 위한 것이지 백성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다. 풍속을 관찰하는 지위와 백성들을 인도하는 책임을 위임한 중요성이 얼마나 큰 것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러는 재물을 긁어모으는 것만 일삼으면서 백성들의 고통을 생각지 않고 더러는 잇속만 다투면서 체면을 훼손시키고 있어 듣기에도 놀랍고 분통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이런 것을 그대로 놓아 둔다면 오히려 나라에 법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지당한 이야기이지만 고종의 이러한 하교는 참으로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고종을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국가지도자라고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이 망한 것은 나랏님으로부터 하급 관리들까지 뇌물이 만연하고 부정과 비리가 횡횡했기 때문이다. 김직현은 비리로 파면된 후 5개월 만에 사면을 받았다. 역시 뇌물의 힘이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온통 뇌물과 비리의 이야기만 가득하다. 전직 판사출신인 최유정 변호사의 법조 비리, 국민의당 김수민 의원과 관련된 홍보물 비리 의혹, 국방부의 방산비리, 롯데그룹과 이명박 정부와의 스캔들까지 참으로 기가막힌 일만 가득하다. 나라가 온전히 운영되고 발전하려면 이러한 뇌물과 비리는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 이제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뇌물을 주고받는 기득권층들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조선시대 혹은 독재정권 시대의 침묵하는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