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갓난 아이와 함께 실종됐다가 20여일만에 강원도 고성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20대 주부 살해암매장 사건(본보 2004년 6월18일자 23면보도)은 빗나간 사랑에 눈 먼 한 여자와 돈만을 좇은 심부름센터 직원들이 합작한 '인면수심'의 범죄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990년 결혼해 남매까지 둔 김모(36·여)씨의 '잘못된 만남'에서 시작됐다. 김씨는 2003년 3월 서울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연하에 수려한 외모를 갖춘 최모(31)씨를 만났다.
배달일을 하는 남편에 비해 운수업을 하는 최씨의 경제적 여유를 부러워한 김씨는 “임신을 했다”는 거짓말을 해 최씨와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이미 불임 수술을 받은 김씨가 다시 임신하기는 불가능했고, 궁리끝에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심부름센터 의뢰였다. 2003년 10월 '무엇이든 대신 해드린다'고 내건 심부름센터에 “아들·딸 상관없이 미혼모 아이를 데려와 달라”고 부탁하고 대가로 7천만원을 약속했다.
심부름센터 직원 정모(40)·박모(36)·김모(40)씨는 예상치도 않던 목돈을 벌기 위해 '아이'를 찾아나섰고 여의치 않자 대담하게도 길거리 납치를 계획했다.
지난해 5월24일 오후 2시께 평택시 포승면. 때마침 생후 70일된 아기를 안고 걸어가던 A(21)씨가 정씨 등의 눈에 들어왔고 이들은 한낮에도 불구하고 주저없이 A씨와 아기를 승용차로 납치했다. 이들은 곧바로 광주에 살던 김씨에게 돈을 받고 아기를 넘겼다. 정씨 등은 이어 “내 아들을 돌려달라”며 울부짖는 A씨를 차 안에서 목졸라 살해한 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미시령 인근 야산에 묻었다.
아기를 받기전까지 김씨는 심부름센터에서 '가짜 하객'을 고용해 결혼식을 올린뒤 “원정출산을 통해 아기를 낳았고 아이는 외삼촌이 나중에 데려올 것이다”며 남편과 시댁식구를 속였다. 또 멀쩡히 다른 사람의 호적에 올라 있는 아기의 이름과 생일을 바꿔 최씨의 호적에 이중으로 올리는 등 철저하게 위장된 삶을 이어갔다.
이후 정씨 등은 김씨를 협박해 5천여만원을 추가로 뜯어내는 등 추악한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한편 A씨의 시신은 실종된지 20여일만인 다음달 15일 발견됐지만 사건은 반년이 넘도록 미궁에 빠져 있었다. 일반적인 납치당시 있게 마련인 대가 요구도 없었을뿐 아니라 이렇다할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히 '암매장'될 줄 알았던 사건은 정씨 등이 교통사고 뺑소니 혐의로 수배중인 차량을 타고다니다 경찰의 검문에 걸리면서 결국 막을 내렸다.
경찰은 24일 정씨 등 심부름센터 직원 3명에 대해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아기를 넘겨받은 김씨에 대해서는 인신매매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왕정식·김종호·이성호·starsk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