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박사
이태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장
2012년 10월 하순, 중국 북동부 지역에 극심한 스모그가 발생해 학교는 물론 도로와 주요 공항이 폐쇄된 적이 있다. 인구가 1천만 명이 넘는 하얼빈 시의 가시거리는 20m 이하였고, 헤이룽장 성의 모든 고속도로도 폐쇄되었다고 한다.

석탄과 디젤유 그리고 나무와 같은 화석연료를 태운 결과로, 크기가 2.5㎛(PM2.5) 이하의 입자상 물질의 농도가 ㎥당 1천㎎에 달했는데, 이는 세계보건기구의 최대 권장수준의 40배가 넘는 엄청난 수치였다. 이 같은 미세먼지는 일반인은 물론 어린이와 고령자 특히 호흡기나 심혈관계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대기환경도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얼마 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2016년 환경성능 지수(EPI)에 따르면 국내 공기 질 수준은 전체 조사대상 180개국 중 173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공기 질의 세부 조사항목 중 초미세먼지 노출 정도도 174위를 기록해 꼴찌를 기록한 중국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몇 주 전 국내 최고높이를 자랑하는 123층 건물의 꼭대기에 오를 기회가 있었다. 대도시 전체가 둥그런 회색 띠로 둘러싸여 있는 걸 볼 수 있었는데, 마치 이런 현상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다. 그나마 비교적 시야가 좋은 날이라는 안내인의 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최근 국내에서 자주 발생하는 고농도 미세먼지가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중요한 환경문제라는 인식에 따라 정부는 지난 6월 3일 총리 주재로 열린 관계부처 장관 회의에서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을 확정, 발표했다.

친환경차 보급 확대, 경유차 관리 강화, 석탄발전소 미세먼지 저감 및 신산업 육성 등의 정책수단을 통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미세먼지 농도를 10년 내에 유럽 주요 도시의 현재 수준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과 실효성에 대해 적지 않은 의문이 제기되었고, 정부는 급기야 비판에 대한 해명자료를 내기에 이르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먼저, 보다 철저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했다. 우리는 몸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을 찾는다. 의사는 처방을 하기에 앞서 문진이나 간단한 검사를 통해 병의 원인을 들여다본다. 때로는 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혈액검사나 엑스레이 검사와 같이 더 복잡한 검사를 하기도 한다.

발생된 미세먼지의 성분으로 추측하기에 앞서 발생 원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우선이다. 국내에서 발생 된 것인지, 이웃 나라에서 날아온 것인지 여부에 대한 논란부터가 원인분석이 불충분했다는 증거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정확한 원인 규명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족집게 처방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원인 규명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

다음으로, 진단결과에 따른 정확한 처방이 필요했다. 의사의 처방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전문지식과 임상경험에 따라 각종 수단이 동원된다. 질병의 원인과 상태에 따라 약을 먹기도 하고 주사를 맞기도 하며 수술을 받기도 한다. 처방결과를 보면 비전문가라도 병의 원인과 상태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이번 미세먼지 대책의 처방으로는 발생 원인이 뭔지 정확히 알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정책 우선순위가 안 보이고, 규제 일변도의 대책들이 주를 이뤘다.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단편적인 대책들이 이를 말해준다. 물론 단기적인 대증요법도 필요하다. 하지만 발생 원인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국민들은 원하고 있다.

베이징 등 주요 도시의 스모그 발생 원인을 찾아 나선 중국정부는 도심 주변 공장의 매연에 주목해 반경 500㎞ 밖으로 이들을 이전시키는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한다. 또 경유차가 내뿜는 매연을 주범으로 지목해 스모그 발생의 근본원인도 없애면서, 전기차 산업의 국산화를 통해 첨단산업 종주국의 꿈을 키우고 있다는 보도다. 부처별로 눈치를 보며 유류세와 환경세 인상카드를 만지작거렸던 우리와 대비된다.

위기는 곧 기회다. 정치논리로 풀어갈 문제가 아니다. 급한 불은 꺼야겠지만 미래지향적인 고민이 함께 담겨야 한다. 에너지 수급체계와 온실가스 감축 등 국가적 현안을 동시에 해결하는 묘책을 찾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이태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