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부조리·부패 도려내는 입법·제도화 '정치의 몫'
정치가 '악의 축'으로 매도 될수록 회생불능에 빠져
변혁 실종으로 연결돼 결국 기득권만 공고히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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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헌법 44조와 45조는 의원들에게 회기중에 국회의 동의없이 체포·구금되지 않을 권리와 직무상 행한 발언에 대해 국회 밖에서 책임지지 않을 권리를 부여했다. 이른바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이다. 국회의원의 '특권 내려놓기'가 정치권의 화두가 되었다. 200개에 달한다는 국회의원의 '특권'을 정비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보완·개선한다고 여야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19대 때 새누리당의 보수혁신특위와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치혁신실천위원회는 체포동의안 표결 의무화와 무단결석 의원 세비 삭감 등을 결의했고, 국회의원 특권방지법 제정, 국회윤리감독위원회 설치 등을 제안했지만, 관련법안들은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때 박근혜, 문재인 후보도 불체포특권·면책특권의 제한 등을 공약했다.

권력구조의 형태가 어떠하든 입법부는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구이며 구성원인 의원들도 헌법기관으로서 권한과 책무를 갖는다. 그러나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의 위상과 권위는 특단의 변혁이 없이는 회복 불가능으로 보인다. 정치가 '공공의 적'이 된 지 오래다. 정치불신은 정치적 냉소와 허무주의의 팽배로 연결되고 있다.

소득 격차는 계층 분화와 맞물리고, 이는 사회적 증오와 대립으로 귀결하고 있다. 배려와 관용은 '사치'가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본질적 모순이라고 치부하기에 한국사회의 원심력의 증가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정치가 사회적 균열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각자도생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심화되고 확산되는 한국사회에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경쟁의 대상이다. 경쟁이 공정한 룰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사람을 분노하게 한다. 배려와 양보, 관용과 공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는 사회적 병리를 부채질하는 존재로 간주된다. 사실이 그렇다.

그러나 솔직하게 돌아보자. 우리사회의 병리적 현상이 정치영역에 국한돼 있는가. 기업은, 법조계는, 의료계는, 학계는 어떤가. 모든 영역에서 부조리와 모순이 고착화·관행화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이러한 인식을 일깨우긴 했다. 관피아, 정피아, 학피아, 군피아 등의 정체도 알려질 만큼 알려졌다. 이 순간에도 수 많은 낙하산들이 대기하고 있다. 정치가 이러한 모순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인식은 올바른 분석이다. 그러나 정치는 국회라는 혈세를 먹는 하마와 같은 존재가 망쳐놓았다는 인식, 국회의원들의 특권 내려놓기가 정치개혁의 본질인양 호도되는 현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는 부패했지만, 정치부패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진단과 처방없이 정치가 속죄양이 되는 한편, 다른 부문의 부조리는 면죄부를 받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꿰뚫어볼 수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

정치부재와 정치실종을 끊어내고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한국정치의 구조와 틀을 바꿔야 한다. 결국 사회의 부조리를 바꾸고 부패를 도려내는 입법과 제도화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사회적 합의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에서 정치의 몫일 수밖에 없다. '필요악'을 넘어 '악의 축'으로 정치가 매도되면 될수록 정치는 회생불능에 빠진다. 이는 변혁과 쇄신의 실종으로 연결되고, 기득권은 자신들의 진지(陣地)를 공고히 한다. 이것이 우리가 처해 있는 역설이다.

국회의원들의 특권은 타파되어야 한다. 공항 의전실을 공무도 아닌데 이용하는 구시대적 권위주의의 망령과 공사(公私)의 구분없이 혈족과 인척을 버젓이 채용하는 국회의원들의 민낯은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내려놓기'가 국회와 정치의 대증요법으로 그치고 훨씬 더 심각한 부위를 도려내지 못함으로써 정체와 수구의 덫을 헤어나오지 못하는 우를 범할까 걱정이다. 누구나 정치를 비난하기는 쉽다. 그러나 '정치 때리기'가 구조의 본원적인 혁신을 외면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면, 이는 수단과 목적의 도치(倒置)요, 본말의 전도(顚倒)다. 작금의 국회 특권 내려놓기가 '구조'와 '틀'을 바꾸는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의 실종으로 연결되는 역설로 귀결되지 않아야 한다. 시민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이유이다.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