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군림하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리라는 기대는 헛된 것
먹고 살 것만 있으면 되는 삶
빚이 있어야 파이팅 하는 삶에
우리가 동의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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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민중은 개, 돼지이다. 출발선상이 다른 것이 현실이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 이 나라 교육정책의 심장부,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취중진담'이다. 격분하는 것은 차라리 쉬운 일이다. 먼저 사람을 동물에 견주는 비속어 같은 표현이 거슬린다. 그러나 이는 대다수 입에서 나올 수 있고 인간이라고 당연히 인간 이외의 동물보다 우월한 것도 아니니 이야말로 취중에 가능한 욕설로 치고 듣는 민중 입장에서 마주 욕설하며 한바탕 싸우고 나면 될 일이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이 표현에 들어있는 진실이다. 2016년 현재 한국사회를 함축하는 상징으로 '수저'가 있다. 금수저니 은수저니 흙수저니 하더니 이제는 무(無)수저까지 등장했다. 인간은 다 같은 인간이고 모두 평등하다고 배웠다. 열심히 살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라고 배웠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임을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주인의식을 갖자며 사원을 가족이라고 부르던 회사들은 형편이 어려워지자 제일 먼저 노동자를 해고했다. 최고학력으로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승진해도 금수저 오너일가보다는 아래였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을 인정하는 절망의 표현이 바로 이 '수저론'이다. 이 신계급론이 아직은 자조 섞인 비유에 머물러 있지만 이는 사회적으로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경고이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타고 난 경제적 기반을 도저히 넘어설 수 없다는 절망이 정착하면 어찌될지 상상만으로도 두렵지 않은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명백한 계급이 성문화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하여 우리는 세상에 요구할 수 있다. 출발점이 달라도 저마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라! 능력이 달라도 저마다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방법을 고안하라! 요구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는 특히 교육부가 할 일이다. 성장기에 저마다 소질을 계발하고 스스로 인간으로서 권리를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계기와 동력을 부여해야만 다른 출발점의 격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출발점의 격차는 줄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상상하고 추구하고 요구할 줄 알아야 인간다운 삶의 기회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예 다른 출발선을 고착시켜 신분제를 공고화하잔다. 다시 골품제의 세계, 카스트의 세계로 돌아가잔다. 이것이 이 나라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교육부 핵심간부 정책기획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로 보면 개, 돼지는 은유가 아니라 하위계급의 지능을 의심하며 가축과 같은 존재로 이해하던 전시대 통치계급의 인식을 대변한 것이었다. 소위 1%의 눈에 나머지 99%는 밥이나 굶지 않으면 되는 개, 돼지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것이 비단 실언했다는 당사자 1명의 생각일까? 그렇지 않다. 이미 우리 자신도 '수저론'에 동의하고 있다. 게다가 아주 가까이에 신분제의 공고화를 함께하는 동지가 있으니 한국장학재단의 이사장이다. 한국장학재단의 중요임무는 국가장학금의 운영이다. 지난 선거 때 핫이슈였던 반값 등록금 공약을 절충한 결과 겨우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를 관장하는 한국장학재단의 이사장이란 자가 현재 시행되는 국가장학금을 축소하고 대출로 전환하겠다며 학생들이 '빚이 있어야 파이팅'한다고 공표하였던 것이다. '빚'이 사람을 '노예'로 만들고 '죄인'으로 만드는 것은 새삼 되풀이할 필요도 없다. 요컨대 젊은 학생들에게 학비를 핑계로 '빚'의 굴레를 씌워 할 말이 있어도 못하는 죄인, 부당한 대접을 받아도 빚 때문에 일할 수밖에 없는 기업의 노예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신분제는 이미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저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 자진해서 우리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어 주리라는 기대는 헛되고 헛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고 추구할 권리가 있다. 우리가 이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인간일 것이다. 먹고 살 것만 있으면 되는 삶, 빚이 있어야 파이팅하는 삶에 동의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