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갈 무렵이면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새댁들로 다시 공원 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 물방울처럼 싱싱한 아기들의 웃음과 천지를 진동하는 울음소리는 태초에 신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을 때나 들렸음직한 소리의 문양들로 와글거린다. 또래 아기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아기에게 일광욕을 시킬 겸, 엄마들과 세상 사는 정보도 함께 나눌 겸 유모차 부대를 이루면서 삼삼오오 그늘 속에서 지난밤의 모자라는 잠을 수다로 날려 보내기도 한다. 오전의 시간이 지나가면 공원 안의 놀이터로 모여드는 유년의 아이들은 남자아이, 여자아이를 막론하고 모두가 액티브하다. 공원 안 놀이터는 웬만한 놀이공원의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마치 소인국을 탐험했던 걸리버처럼 모험과 스릴로 아이들의 오후는 즐겁다. 아이들의 시간이 지나가면 공원 안은 청소년들로 붐빈다. 방과 후 딱히 갈 곳도 없는 청소년들로 이용자들의 세대가 자연스럽게 교체되는 것이다. 공원을 찾아온 청소년들은 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의 햇살 아래 꽃보다 더 싱싱한 믿음으로 공원 안을 꽉 채운다.
공원은 새벽 어르신의 나라에서 새댁들의 오전 시간으로, 다시 어린이들의 오후 시간을 지나 청소년들의 만남의 시간으로 형상 이동을 한다. 그런데 그 공원에서는 이상하게도 40·50대 주부들을 볼 수가 없다. 언젠가 서울의 큰 공원을 지날 때 200명도 넘는 중년의 주부들이 모여서 군무를 추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앞에 선 강사를 따라서 모두 한 동작으로 움직이면서 음악에 맞춰 운동을 하는 주부들의 모습은 나이가 있음에도 생기발랄 그 자체였다. 주부들이 가족들의 저녁상을 모두 물리고 조금 한가한 시간이었던 듯하다. 지자체에서 제공했던 딱 한 시간의 여유. 그 시간에 주부들은 내일을 살아가는 활력을 되찾는 듯했다. 주부들이 공원의 주인이 돼 즐거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우리의 공원에선 주부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정작 없는 것일까. 어디에도 끼워 넣어지지 않는 주부들은 진정 잉여의 존재일까. 오직 한 가정을 바로 세우고 지키기 위해 제 한 몸을 희생한 외로운 주부들, 마음이 아프고 슬픈 주부들, 그래서 고독한 주부들, 우리 세대의 샌드위치가 돼버린 주부들…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정작 없는 것일까. 생각이 골똘해진다. 주부는 잉여 인간이 아니다. 주부는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다. 주부는 분명 건강한 우리나라를 세운 기둥이며 우리의 새로운 미래라는 것을 명심하자.
/이순희 경기도의원 (새·비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