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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사랑하다 어렵게 이별
또다시 사랑을 기다리지만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아프지만 그것을 확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온도는
조금 올라갔다는 것을 알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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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소설가
지난 한달만큼 연애에 대해 말하고 생각해야 했던 계절이 있을까. 최근 출간한 책에 '연애'라는 단어가 들어가고 표제작이 옛 연인의 재회를 다루고 있어서인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작품 속의 연애와 나의 연애 그리고 세상의 대체적인 연애에 대해. 이렇게 하면 내가 연애에 대해 꽤 많이 아는 사람 같지만 사실 떠올려보면 즉흥적으로 사랑했다가 별안간 마음이 돌아섰다가 결국 뼈아픈 이별을 해야 하는, 우리 대부분이 겪는 그런 '연애 젬병'에 불과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것에 능수능란한 사람이 몇이나 되나. 그래서 소설에서의 연애란 그것이 얼마나 처참하게 실패했는가를 다룰 뿐, 흥미진진한 연애의 성공담을 담아내는 데 주력하지는 않는다. '보바리 부인'에서는 한 여자의 환상과 욕망 속에 깃들어 자신을 파괴해 들어가는 사랑의 속성을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게 묘파하고, '제인 에어'에서는 숱한 불행을 넘어서 마침내 두 눈이 멀어버리는 비극 앞에서야 완성되는 사랑의 고된 여정을 다룬다. 그런 사랑의 어려움은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아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매번 우리의 한계를 넘는 일이다.

지난주 독자와의 만남을 준비하면서 참석하는 분들에게 옛 연애의 사연과 그것과 관련한 물건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일종의 입장료인 셈이었는데, 그렇게 조건이 달리자 신청을 주저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그런 기획을 한 건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독자와 작가로 만나서 내 이야기를 듣다가 돌아가는 분들도 고맙지만 한번쯤은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처음 3명이었던 신청자들은 강독회 직전에는 조금 더 늘어나 있었다. 그리고 사연과 사진이 도착했다. 남색 스웨터, 디지털카메라, 일기장, 주고받은 편지들… 사진을 하나씩 열 때마다 마음 어딘가가 조금씩 흔들렸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곳에서 살고 사랑하고 이별하면서 소설을 통해 나를 알게 됐고 이제 같은 자리에서 만날 사람들이었다. 군중 속에 숨은 얼굴들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좀 더 가까운 자리의 사람들이었다. 나는 마치 좋아하는 문학작품에 독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인상적인 문장들을 골라 옮겨 적어보았다.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11월 11일", "매번 잘 헤어져 왔어요", "넌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미안하다는 말로 저를 놓아주었죠."

강독회 자리에서는 누가 그 사연의 주인공인지 알려하지 않은 채 그냥 이야기했다. 사연마다 익명 처리해주세요, 하는 당부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내 이야기를 하면서 이것이 '픽션'이라는 사실 뒤에 숨으니까. 그렇게 사연은 한 작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여전히 익명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되었고 늦은 밤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적어도 내게는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열심히 사랑하고 어렵게 이별했으며 또다시 사랑을 기다리지만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건 누구에게나 공평해서 다행이고 한편으로는 그래서 아프지만 그것을 확인하고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의 온도는 조금 더 올라가 있다는 것을. 그것이 기억이 가진 힘이고 누가 이야기하느냐와는 상관없이 모든 이야기가 가진 힘이라는 것을.

/김금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