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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2016년 7월 1일. 프랑스 파리 동양어학교 도서관에 있었다. 파리동양어학교는 루이 16세때 아시아로 파견하는 외교관을 위하여 언어를 집중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만든 349년 교육기관이다. 이 교육기관에서 양성된 수많은 외교관과 제국주의 국가 건설의 신봉자들이 중국과 일본 그리고 조선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아시아를 식민지화 하거나 국제 교류를 통해 자국의 이익을 얻겠다고 치밀하게 준비한 프랑스 사람들을 생각하면 무섭기 그지없다.

유로 2016 축구대회 열기로 가득한 시기에 이곳을 찾아간 것은 특별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이곳에 한글로 작성된 정리의궤(整理儀軌) 때문이다. 이 정리의궤는 주한 프랑스 초대공사인 블랑시(Collin de Plancy)가 구입하였다가 자신의 모교에 기증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너무도 잘 알려진 수원에서 개최된 혜경궁 홍씨의 회갑진찬연을 비롯한 8일간의 화성행차가 기록된 글이다.

이 의궤는 매우 귀중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파리동양어학교에서 한국에서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필자를 포함한 4명의 방문단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자 하였다.

필자는 이곳에서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한글본 정리의궤를 본 것 때문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파리동양어학교 도서관을 관람하고 나서였다. 전 세계의 수많은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고, 전 세계인들이 전문적으로 혹은 대중적으로 공부하고 책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파리동양어학교 도서관이었다. 우리들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해 아시아담당관은 개방된 아시아 서가로 방문단을 안내했다. 그는 자신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에서 간행된 역사와 문학을 비롯한 여러 책들을 소장하고 있다고 환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한국 서적들이 꽂혀있는 서가는 아시아관 가장 뒤편에 있었다. 그런데 기대한 서가의 책은 달랑 2개의 서가에 그것도 상단부 2~3칸 정도만 있을 뿐이었다. 한국 서가 옆으로 일본 서가와 중국 서가가 있었는데 일본 서가는 한국 서가의 10배가 넘었고, 중국 서가는 그 이상이었다. 완전히 충격이었다.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에 전 세계 최고의 도서관 안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본 것이다. 이 부끄럽고 화가 나는 현상에 대해 질문을 했더니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책을 보내주기에 이렇게 책이 많다는 것이다. 그 순간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 수많은 지성들이 이 도서관을 찾았다가 아시아관에서 일본과 중국 한국의 서가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과연 한국을 문화국가로 인정할 것인가? 그 순간 정조가 즉위했던 1776년 이덕무와 박제가가 정조의 명으로 중국 연경 유리창에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을 살 때의 광경이 떠올랐다. 서점 주인이 이들에게 던진 한마디는 비수였다. "조선이 문명국가인줄 알았더니 이제 겨우 고금도서집성을 한질 사러 왔구려, 일본은 이미 10년 전 두질을 사갔는데!" 200년 전 일본은 작은 섬나라 국가가 아닌 문명국가로 나가려 했는데 조선은 허울만 문명국가였지 실제 문화를 높이기 위한 노력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200년이 지난 21세기 오늘도 역시 우리는 변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파리동양어학교 도서관 한국서가에서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진 것이다. 정부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줄 수 있는 책을 사서 그들에게 지원하지 못한다면 당장 필자의 책이라도 그들에게 보내야겠다. 너무도 부끄러운 시절이다.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